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심(仲深). 아버지는 이조참판 정기(廷夔)이다. 일찍이 송시열(宋時烈)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추천으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이 주어졌으나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희릉참봉(禧陵參奉)에 배수되었으며 곧 포천현감이 되었다. 1689년 기사사화가 일어나자 즉시 현감직을 버리고 결성의 삼산(三山)에 집을 짓고 거기서 살았다.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난 뒤 다시 훈련도감에 들어갔다. 이어서 종묘서영(宗廟署令)이 되었다가 평창군수를 제수받았다. 그러나 이를 시기하는 자가 있자 굳이 그는 사양하고 교체되었다가 임오년에 죽었다. 이단상(李端相)의 사위로 그에게서 수학하였으며, 특히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또 예법에 정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