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현 초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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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문신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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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의 문신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초상화.
내용

세로 165㎝, 가로 96㎝.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 하장리경주이씨 종중 소장.

이 영정은 말미(末尾)에 묵기(默記)와 낙관(落款)이 있어 공(公)의 79세상(才像)임을 알 수 있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조선 중기 후손 이사균(李思均)에 의해서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이제현 초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모사(模寫)한 것으로 보이며 크기나 채색이 원본과 거의 같다.

발문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제현 초상(국보, 1962년 지정)과 동일한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우(延祐) 기미(己未), 내 나이 33살이 되던 1319년(충숙왕 6)에 절강의 보타사(寶陀寺)에 제사를 지내로 가는 충선왕을 따라갔다. 왕은 고항(古杭) 출신의 초상화 화가인 진감여(陳鑑如)를 불러 나의 얼굴을 그리게 하였으며, 그리고 문장가인 북촌(北村) 탕병룡(湯炳龍)에게는 찬문을 짓도록 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오자 남이 본다고 빌려가 소재지를 모르게 되었다. 21년 후인 1340년(충혜왕 1)에 나라의 국서를 받들어 원나라 수도 연경에 가게 되어 다시 초상화를 찾았다. 지금의 노년 모습과 초상화를 그릴 장년의 모습이 달랐음에 놀랐으며, 헤어짐과 만남에도 때가 있음을 느겼다. 한□운(韓□雲)으로 하여금 붓을 잡게 하고, 나는 아래의 시를 지어 감회를 기록한다.[延祐(己未), 余年三十三, (從)忠宣王. (降)香江浙(之寶陁窟). 王召古杭陳鑑如, 寫陋容, 而(北)村爲之贊. □歸爲人(借)觀, 因(失所)在. 後二十一年, 奉國表如京師, 復得之. 驚老壯之異貌, 感離合之有時. 使韓□雲把筆口, (題)四十字爲識.]”

“내가 예전에 나의 모습을 남길 적에는 / 양쪽 귀밑머리는 파란 봄이었다 // 이 초상화가 많은 세월 동안 떠돌아 다니나가 / 우연히 다시 만나니 그림 속에 남은 정신은 여전하다 // 초상화 속의 인물은 다른 인물이 아니고 나이며 / 예전의 내 몸이 바로 후일의 내몸이라네 // 손자들은 완전히 알아보지 못하고 / 초상화의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본다 // 익재[我昔留形影 / 青青兩鬢春 // 流傳幾歲月 / 邂逅尙精神 // 此物非他物 / 前身定後身 // 兒孫渾不識 / 相問是何人 // 益齋]”

익재 이제현의 초상화 글씨를 누가 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 없으나, 고려 말 명필로 명망 높던 맹운(孟雲) 한수(韓脩, 1333∼1384)추정된다.

호상(胡床)에 좌측면관좌상(左側面觀坐像)으로 세선(細線)으로 그리고 엷은 색을 칠한 후에 다시 윤곽을 잡았다. 남색의 깃을 대고 탕건(宕巾)과 신발은 흑색이다. 화법이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영당(影堂)은 조선 연산군 10년(1504)에 후손 눌헌(訥軒)이 이사균(李思均)이 부수찬(副修撰)으로 폐비 윤씨의 복위 운동을 반대한 죄로 이곳 보은에 중도부처(中途付處)되었을 때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한다.

본 영정은 이 무렵에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영당 건물은 목조 기와집으로 건평 약 10평에 정면 2칸, 측면 1.5칸의 익공을 달은 맞배집이다.

이제현의 호는 익재(益齋), 본관(本貫)은 경주(慶州),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정당문학(政堂文學),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해졌다. 대학자이며 명문장가(名文章家)로 주자학(朱子學)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저서는 『익재난고(益齋亂藁)』, 『익재집(益齋集)』, 『역옹패설(櫟翁稗說)』 등이 있다.

참고문헌

『충청북도지(忠淸北道誌)』(충청북도, 1995)
『보은군지(報恩郡誌)』(보은군지편찬위원회, 1994)
『인물지(人物誌)』(충청북도, 1987)
『문화재지(文化財誌)』(충청북도, 1982)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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