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은 백고좌법회의 근거가 되는 경전이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説仁王般若波羅蜜經)』과 불공이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이 있다. 이 경에서는 국왕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공덕으로 국토를 보호할 수 있다고 하여 왕이 직접 반야바라밀을 외우고 법회를 열도록 요구한다. 이 법회는 인왕재(仁王齋), 인왕반야회(仁王般若會), 인왕도량(仁王道場), 백좌도랑(百座道場) 등으로도 불렸다. 613년(진평왕 35) 7월 황룡사에서 백고좌법회가 열린 이래 고려시대까지 자주 개최되었다.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에는 두 가지의 한역본이 있다.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説仁王般若波羅蜜經)』과 불공(不空, 705~774)이 다시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이다. 이 두 한역본에 큰 차이는 없지만, 불공의 번역본에는 밀교적(密敎的)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난다.
『인왕반야경』은 2권 8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8품의 품명은 ① 서품(序品), ② 관공품(觀空品), ③ 보살교화품(菩薩敎化品), ④ 이제품(二諦品), ⑤ 호국품(護國品), ⑥ 산화품(散華品), ⑦ 수지품(受持品), ⑧ 촉루품(囑累品)이다. 서품에서는 석가모니(釋迦牟尼) 당시 인도의 16대왕이 함께 자리하는데, 특히 파사익왕(波斯匿王)이 중심이 되어 부처님과 문답을 시작하는 광경이 서술되어 있다. 다음으로 반야(般若)가 잘 지켜야 하는 이유인 내호(內護)에 대한 것, 반야에 의해서 지켜지는 국토의 외호(外護)를 밝힌 다음, 내호와 외호의 인과 관계를 명시하였다. 마지막 촉루품에서는 불멸(佛滅) 후에 정법(正法)이 쇠퇴하여 없어진다는 것을 예언하였고, 7란(亂)이 멸하고 7복(福)이 생하도록 하기 위해서 16대 왕에게 반야의 법문을 머릿 속에 새기도록 당부하였다. 즉 이 경은 국가를 정당하게 수호하여 영구히 번영하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방법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호국불교’ 담론에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호국의 의미를 호법(護法) 즉 정법치국(正法治國)이라 하여 『인왕반야경』에 나오는 호국의 ‘국’을 깨달음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인왕반야경』은 국토를 안온(安穩)하게 하고 국가를 융창(隆昌)하게 하는 호국의 방책을 불교의 본의(本義)로부터 논증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경에서는 내외의 수호와 인과의 상호 관계에 의해 국토를 지킬 것을 명시하였으며, 호국의 본질을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 즉 불지(佛智)를 증오(證悟)하는 것에 두었다. 만약 국가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게 되면, 국왕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공덕으로 국토를 보호할 수 있다고 하여 국왕이 직접 반야바라밀을 외우고 법회를 열 것을 요구하였다.
신라에서 『인왕반야경』에 근거를 둔 백고좌법회가 처음 개최된 것은 613년(진평왕 35) 7월 황룡사에서였다. 이후 636년 황룡사에서, 706년 봉덕사에서, 876년, 886년, 887년, 924년 황룡사에서 백고좌법회를 개최한 기록이 있다. 924년(경애왕1)에 행해진 백고좌법회에서는 선종 승려 300명을 초청하여 반승(飯僧)하였음을 특기하고 있다.
신라의 백고좌법회에서는 구마라집의 번역본을 사용하였고, 신라 말부터 고려시대의 백고좌법회에서는 불공의 역본을 따랐다는 해석이 있다. 구마라집 역본의 제5 호국품에 백고좌법회를 개설하는 방법이 명시되어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100개의 불상과 100개의 보살상을 모셔 놓고, 승려와 신도들이 자리를 같이하며, 100명의 법사(法師)를 청해 반야바라밀을 강(講)하도록 한다. 100명의 법사가 사자후(獅子吼)를 외치는 고좌(高座) 앞에는 100개의 등을 밝히고 100가지 향을 피우며 100가지 꽃을 가져다 삼보를 공양한다. 그리고 삼의(三衣)와 그밖의 집물(什物)로 법사를 공양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또한 이 경에는 하루에 두 번씩 『인왕반야경』을 외우면 갖가지 귀신들이 국토를 지키는 존재로 바뀌어 국토를 수호하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이 경을 강독하면 호국뿐만 아니라 호복(護福)까지도 갖추게 된다고 하여 고려시대에는 평화시에도 빈번히 백고좌법회가 열렸다.
『인왕반야경』에 대한 주석서로는 신라 원측(圓測)의 『인왕반야경소(仁王般若經疏)』 6권과 태현의 『인왕경고적기(仁王經古迹記)』, 지의(智顗)가 설한 『인왕호국반야경소(仁王護國般若經疏)』 등이 있다. 이 중 원측의 소는 길장(吉藏)의 『인왕반야경소(仁王般若經疏)』와 함께 『인왕반야경』에 대한 양대 소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