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름은 호(岵)이다. 자는 천윤(天胤)이다. 중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章敬王后)이다. 비는 첨지중추부사 박용(朴墉)의 딸 인성왕후(仁聖王后)이다.
1520년(중종 15) 세자로 책봉되었다. 25년 간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1544년 즉위하였다. 이듬해 기묘사화로 파방된 현량과(賢良科)를 복구하였다. 또한 조광조(趙光祖) 등의 기묘명현을 신원하였다. 성품이 조용하고 욕심이 적었으며, 어버이에 대한 효심이 깊고 형제 간의 우애가 돈독하였다.
3세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하였다. 1522년에 관례(冠禮)를 행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매일 세 차례씩 글을 읽었다. 동궁으로 있을 때는 화려한 옷을 입은 시녀를 궁 밖으로 내쫓을 만큼 검약한 생활을 하였다.
형제 간의 우애가 돈독해, 누이 효혜공주(孝惠公主)가 어려서 죽자 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깊어 병을 얻었다. 서형(庶兄)인 복성군 이미(福城君 李嵋)가 그의 어머니인 박빈(朴嬪)의 교만으로 인해 귀양 가게 되었을 때, 이를 석방할 것을 간절히 원하는 소를 올렸다.
이에 중종도 그의 우애 깊음에 감복해 복성군의 작위를 다시 주었다. 중종의 병환이 위독할 때는 반드시 먼저 약의 맛을 보고, 손수 잠자리를 살폈다. 부왕의 병환이 더욱 위중하자 침식을 잊고 간병에 더욱 정성을 다하였다.
1545년(인종 1) 병환이 위독해지자 대신 윤인경(尹仁鏡)을 불러 경원대군(慶源大君: 뒤의 明宗)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경복궁 정침(正寢)에서 31세로 죽었다. 시호는 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榮靖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이다. 묘호(廟號)는 인종이다. 능호는 효릉(孝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