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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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합문(閤門 : 朝會의 의례를 맡았던 관아)의 정5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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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합문(閤門 : 朝會의 의례를 맡았던 관아)의 정5품 관직.
내용

정원은 2인이다. 합문은 1275년(충렬왕 1) 10월통례문(通禮門)으로 고친 뒤 합문·중문(中門)·통례문 등으로 개변(改變)을 되풀이하였는데, 1356년(공민왕 5) 문종구제(文宗舊制)인 합문으로 고칠 때에는 인진사가 정4품으로 승격하기도 하였다.

인진사에 대하여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고려사』형법지(刑法志) 덕종 2년의 피마식조(避馬式條)에 보이는 남반인진사이다. 이것은 인진사가 처음에 남반직(南班職)이었다가 문종 때에 문반직으로 전환한 것을 뜻하고 있다.

남반은 근시직(近侍職)으로서 문종 때에 7품 한직(限職 : 일정한 직급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일)으로 격하되었지만, 본래는 문무반에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상당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예컨대, 남반선휘사(南班宣徽使)는 피마에 있어서 문반4품 이상 및 무반3품과 대등한 서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종 때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정비와 더불어 정권담당자들이 근시세력을 약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반을 7품 한직으로 격하시키면서 본래 6품 이상이었던 인진사는 문반으로 전환하여 합문의 정5품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여대남반고(麗代南班考)」(조좌호, 『동국사학(東國史學)』5, 1959)
집필자
김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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