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空觀) · 가관(假觀) · 중관(中觀)이라고도 약칭하며, 공가중(空假中) 삼관이라고도 한다. 이때의 삼관은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의 종가입공이제관(從假入空二諦觀) · 종공입가평등관(從空入假平等觀) · 중도제일의제관(中道第一義諦觀)을 바탕으로 하여 정립한 것이다.
공관은 삼라만상이 모두 공무(空無)하므로 한 물건도 실재하는 것이 없다고 관하는 것으로, 견사(見思)의 혹(惑)을 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견사의 혹이란 과거 · 현재 · 미래 삼세(三世)의 도리에 미혹되어 있는 견혹(見惑)과 사상(事象)에 미혹되어 있는 사혹(思惑)을 합한 것으로서, 이 두 가지가 중생 세계의 생사(生死)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가관은 삼라만상의 어느 한 물건도 실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상적으로는 분명하게 있는 것을 관하는 것으로, 진사의 혹이란 티끌과 같이 많은 무지(無知)를 뜻하는 것으로, 공관에 의하여 공(空)의 이치에 집착한 채 삼라만상이 가지고 있는 차별적인 모습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공관을 통하여 현상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양상을 관찰하고 보살의 자비를 키워가는 것이다.
중관은 모든 법이 공도 아니고 유(有)도 아니며, 공이면서 유요, 유이면서 공임을 관하는 중도적 입장의 관법으로서, 이 관법에 의하여 무명(無明)의 혹을 끊게 된다. 무명의 혹은 모든 것이 일법계(一法界)임을 알지 못하는 미세한 번뇌이며, 이 번뇌를 끊게 되면 해탈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삼관을 닦는 방법으로는 이 세 가지 관법을 별개의 것으로 나누고, 그 다음에 세월을 두고 관하는 별교(別敎)의 삼관과 일념(一念) 가운데 공가중(空假中)이 융화된 진리를 관하는 원교(圓敎)의 삼관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원교의 삼관은 일념의 마음이 대상이 되는 것으로, 일심이 공하면 일체가 공하고 일심이 가이면 일체가 가이며, 일심이 중이면 일체가 중이라고 하였다. 즉 일심을 관조하여 대상에 사로잡히는 마음을 파하고 모든 현상을 살필 뿐만 아니라 절대의 세계까지를 체달하는 것이다.
이 일심삼관의 사상은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사상과 함께 고려의 후삼국통일에 밑거름이 되었다. 고려 태조는 “삼관이 일심에 있다는 깊은 묘법(妙法)이 삼국을 통합하는 것과 계합한다.”고 한 도선(道詵, 827-898)의 주장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리고 의천(義天)이 일심삼관을 닦으면 미혹을 깨쳐서 무애자재(無碍自在)할 수 있음을 강조하게 됨에 따라 그 뒤 우리나라의 천태종에서는 이 관법을 매우 중요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