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충민공 충렬사 ( )

목차
관련 정보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조선시대사
유적
국가유산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후기 임경업 관련 사당.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忠州 林忠愍公 忠烈祠)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69년 11월 24일 지정)
소재지
충북 충주시 충열1길 6 (단월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후기 임경업 관련 사당.
내용

1969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 임경업(林慶業)의 절의를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임경업은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영변부사ㆍ의주부윤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의 은의를 생각하여 숭명배청운동을 주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청나라의 포로가 되었다. 몇 년간 옥고를 치른 뒤 본국으로 소환되었으나, 김자점(金自點) 등의 모함으로 옥중에서 피살되었다. 그 뒤 그의 충절이 밝혀지면서 좌찬성에 추증되고, 충민(忠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의 무덤이 이곳에 있어 인근 선비들이 그의 덕망을 추모하여 1697년(숙종 23)에 충렬사를 건립하여 매년 봄ㆍ가을에 제향하였다. 평택임씨 문중에서 사우를 관리해오다가 1978년 국가에서 건물을 보수하고 경내에 조경사업을 실시하였다.

사당 앞에는 충주 충렬사비와 그의 부인 이씨의 정려비가 세워져 있다. 충주 충렬사비는 200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그의 영정을 일본인들에게 도난당하여 종손이 예비로 보관하여오던 영정을 다시 봉안하여 향사(享祀)하고 있다. 사당 앞 우측에는 유물전시관을 마련하여 그가 평생 사용하던 보검을 비롯한 유품을 진열해놓고 있다.

참고문헌

『여지도서(輿地圖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조두록(俎頭錄)』
『토향지(土鄕誌)』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문화재관리국, 1977)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