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잔’으로 다 통하고 있으나 한자어로는 잔(盞)·잔(琖)·배(坏)·배(杯)·배(盃)·작(爵) 등을 쓰고 있으며, 완(盌)·완(碗)·완(椀)·구(甌) 등도 잔의 뜻으로 쓰일 때가 있다.
잔(琖)·배(坏)·배(杯)·작(爵)은 각각 옥(玉)·흙(질)·나무·금속으로 만든 재질의 이름이며, 잔(盞) 또는 배(盃)는 불로 구운 도자기 재질을 뜻하면서 굽이 있는 잔임을 나타낸다. 나아가 어떤 쓰임새를 나타내게도 되는데 보통 작은 제례·의례용의 잔이 된다.
잔의 재질은 금·은·청동·금동·쇠·구리 등의 금속, 옥·수정·곱돌[蠟石] 등의 석재, 흙으로 된 토기, 청자·백자·분청(粉靑), 그 밖에 나무·유리·칠보 등 다양하다. 오늘날에는 스테인리스·합성수지 같은 인조재질도 많다. 잔은 예로부터 생활용 및 부장용(副葬用), 공양·의기용에 두루 쓰였다.
생활용에는 물잔·찻잔·술잔 및 등잔용 등으로, 공양·의기용은 술잔·찻잔 및 사리기로 쓰였음을 볼 수 있다. 잔의 구성은 뚜껑의 있고 없음, 굽의 있고 없음, 손잡이의 있고 없음으로 이루어지며 그 밖에 따로 잔대(盞臺, 盞托, 托盤)가 갖추어지기도 한다.
잔의 크기는 대·중·소(깍정이)가 있으며, 생김새는 여러 가지로 ① 통형(筒形), ② 보시기형[鉢形], ③ 바라기형[盌形], ④ 상형(象形), ⑤ 이형(異形) 등의 형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통형에는 원통형·사각통형·사각통의 모를 죽인 모죽임형이 있고, 보시기형에는 구부(口部)가 바로 선 직바리형과 안으로 오그라진 오목바리형이, 바라기형에는 입이 밖으로 살짝 휘어진 형과 매우 심하게 휘어진[外反]형이 있다.
상형에는 연꽃 같은 꽃송이형, 짐승의 뿔꼴인 뿔잔형[角坏形]과 팽이꼴을 한 짧고 통통한 뿔잔형이 있고, 바가지 또는 복숭아형 및 안이 깊고 울이 높은 이른바 컵형의 아랫도리가 둥그스름한 종형(鐘形) 등이 있다.
이형으로는 뿔잔 끝에 말·사슴 등을 만든 동물형, 잔 둘이 나란히 붙은 형, 다섯 개가 붙은 등잔, 잔 아랫도리가 방울형인 꼴, 그리고 받침 위에 짐승을 두고 잔(각배)을 올려놓는 등의 이형받침들도 보인다. 이 밖에도 뿔잔처럼 잔대가 같이 갖추어진 반잔(盤盞)도 있다.
잔의 손잡이는 외손잡이와 양손잡이[兩耳]로 나타내며 생김새는 고리손잡이와 고사리꼴의 서린손잡이가 있다. 굽은 낮거나 높은 통굽의 원통형과, 이른바 고배(高坏)의 굽인 밑이 벌어진 나팔형이 있고, 다리굽에서는 삼족형(三足形)이 보인다. 굽이 없는 잔은 거의가 납작바닥[平底]이나, 원저(圓底)·원뿔형[圓錐形]도 있다.
잔의 장식은 겉에 갖은 무늬가 새겨지는 것 외에도 영락(瓔珞)이 달리거나 뚜껑 등에 여러가지 토우(土偶)들이 장식되며, 굽에는 원형·삼각형 또는 직사각형으로 뚫린 구멍[透孔, 透窓] 치레도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토기잔이 만들어지면서 청동기·초기철기·원삼국시대를 거쳐 가야·신라·백제 및 통일신라·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잔이 시대적인 특징을 띠고 만들어져 공예품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황남대총 북분(皇南大塚 北墳, 5세기)에서 나온, 입술에 영락이 돌려지고 높은 나팔굽에 네모구멍까지 뚫린 치레의 금제고배(보물, 1978-2 지정), 황복사삼층석탑(皇福寺三層石塔, 692) 사리장치(692∼706)의 하나였던 벌어진 높은 굽을 한 금·은의 잔들, 하나의 나팔굽 위에 5개의 잔이 돌려진 토제 신라등잔, 무령왕릉(525)의 청자등잔들, 나팔굽 위에 짚신치레를 한 토제 신라잔, 항아리[壺]꼴에다 네 쪽으로 굽을 에어내 만든 토제 가야잔, 고려의 연리문(練理文)이나 진사채(辰砂彩)의 청자잔들을 들 수 있다.
신라에는 또 짙거나 옅은 푸른빛을 띤 여러 형태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든 뛰어난 유리잔이 많으며 특히 전이 달리고 높은 나팔굽을 한 갈색유리 연리문잔(보물 1978-1 지정)도 주목된다.
나아가 석굴암 문수보살이 든 바라기잔도 유리잔으로 여겨지며, 송림사오층전탑(松林寺五層塼塔) 사리기(8세기 말)에는 도톰한 둥근고리무늬들이 돌려진 보시기형의 녹색 유리잔이 있고 그 속에 녹색사리병이 놓여 있다.
한편, 잔과 잔대가 갖추어진 반잔(盤盞, 托盞)으로는 무령왕릉(왕비, 529)의 은잔과 신라의 토제 녹유잔(綠釉盞, 7세기 말)이 있다. 뚜껑까지 있는 이 둘은 형태가 꼭 같다시피한데 넓은 탁반(托盤, 盞臺)을 한 이 형식은 고려에 와서 청자와 은제로 유행하게 된다.
그리고 가야·신라에 많은, 뚜껑이 있거나 없는 고배라 부르는 특징적인 부장·의기의 그릇이 있는데, 이는 잔이라기보다 벌어진 높은 굽을 한 접시(굽다리접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