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부리기는 서기전 1800년경부터 바빌론(Babylon) 등에서 비롯되었으며, 우리나라는 초기철기시대부터 마구가 나타난다. 차차 기마풍습(騎馬風習)의 성행으로(『삼국사기』의 기록 등) 신라·가야의 무덤에서 많은 마구가 부장품으로 나오고 있으며, 같은 때의 일본 무덤에서도 보여 당시 우리와의 관계가 주목되고 있다.
행엽은 말등에 안장을 붙들어 두기 위하여 가슴과 엉덩이쪽으로 돌아간 끈에 치레로 매달아 흔들리게 한 납작한 드리개로, 엉덩이께로 돌아가는 뒤쪽의 끈에 더 많이 단다. 끈에 매달기 위하여 위쪽의 네모난 고리에 U자 꼴의 쇠고리를 다시 끼우는 장치가 따로 붙어 있다.
거의가 쇠로 된 행엽의 생김새는 곧 살구잎[杏葉]꼴이나, 밑쪽에 치맛자락같이 혀가 길게 붙은 꼴로도 나타나는데, 밑의 단이 두 번 또는 네 번 주름진꼴[稜花形]과 단의 가운데가 뾰족한 팽이꼴이 있다.
고구려의 말띠드리개는 쌍영총(雙楹塚, 5세기)의 말탄 무사 그림에 살구잎이 없는 단이 팽이꼴을 한 단출한 네모꼴이 보이고 있으나, 실물은 납작한 살구잎꼴에, 가장자리에는 테두리가 씌워져 바닥은 十자꼴로 얽어매듯 테를 붙이고 쇠못을 몇 곳에만 박은 단출한 꼴이다.
가야·신라의 살구잎꼴 행엽은 테두리에 촘촘히 못을 박고 바닥의 테는 가운데에 인동꽃에 의한 여러 가지 무늬를 만들어 꾸미고 있다. 그리고 살구잎꼴 밑쪽에 긴 자락이 크게 붙은 꼴은 그 단이 두번 또는 네번으로 주름진꼴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천마총(5, 6세기) 금동행엽은 살구잎꼴(11.2×10.6㎝)을 한, 쇠판에 57개의 잔못을 돌려박은 도톰한 금동판의 테두리를 씌운 것으로, 바닥 가운데는 인동이 큼직한 여의두문(如意頭文)의 화려한 치레를 만들고 있다. 이 밖에도 금령총(金鈴塚, 5, 6세기)에서 나온 기마인물상(국보, 1962년 지정. 높이 23.5㎝)에는 단출한 살구잎꼴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행엽은 나중에 살구잎꼴이 없이 그냥 치마쪽만으로 된 것이 나타나면서 따로 덮이는 테두리도 없어지게 된다. 바닥에 입혀지는 테의 무늬도 인동당초(忍冬唐草)들로 얽혀진 번잡한 무늬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