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주령(八珠鈴)·팔령구(八鈴具)라고도 하는, 흔하지 않은 청동방울로, 석관묘(石棺墓) 같은 무덤에서 한 쌍으로 나오고 있다.
불가사리꼴로 생겼는데, 납작한 판(體盤)에 여덟 방향의 방사꼴(放射形)로 퍼진 돌기 끝에 둥근 방울이 하나씩 달린 특징적인 생김새를 하고 있다. 판의 뒤쪽 가운데에는 반달꼴의 작은 고리가 나 있어서, 끈을 꿰어 쥐거나 어디에 붙여 매어 쓸 수 있게 되어 주의를 끈다.
특히, 청동기시대는 벼농사〔稻作〕를 하던 때여서 이 청동방울은 농경(農耕) 생산을 위한 종교의식구(宗敎儀式具)가 아닌가 생각된다. 《삼국지 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한(韓)에 따르면, 5월에 씨뿌리기를 끝내고 나서 귀신에게 제(祭)를 지내며 가무음주(歌舞飮酒)로 밤새우는데 탁무(鐸舞)를 추었으며, 또한 10월에 농사를 마치고 제를 지내는데 별읍(別邑)인 소도(蘇塗)에는 귀신을 쫓는 방울·북(鈴鼓)을 매단 긴 나뭇대를 세웠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미누신스크(Minusinsk)·스키타이(Scythai)·오르도스(Ordos)문화에 흔히 보이는 방울과 새〔鳥〕로 이루어진 청동의구들과 같은 무구(巫具)의 하나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결국 크기(12.3㎝ 안팎) 및 생김새와 기능성에서 볼 때 무구(舞具)가 아닌가 한다. 시대는 청동기의 발전기가 되는 3기(後期)인 서기전 3∼1세기 때로 보고 있다.
팔두령에는 청동거울과 더불어 청동기시대 무늬의 전형이 나타나 있다. 점선과 막대선을 비롯한 이등변삼각형들을 번갈아 가며 세우거나 누이거나 하면서 판의 가운데에서 돌기면에까지 펼쳐진 꼼꼼한 기하학(幾何學) 무늬를 만들어 가득 새기고 있다.
방울쪽은 돌아가며 좁고 긴 타원꼴 울림구멍을 4개씩 내고 있으나, 1972년 국보로 지정된 전라남도 화순대곡리출토청동유물 중 팔두령은 앞쪽에 마주 붙은 겹곱돌이무늬〔雙渦頭文〕를 새기고 있어 뒷면에 두 곳만 뚫고 있다.
이 밖에도 배불림된 둥근 청동막대 양끝으로 방울이 달린 쌍두령(雙頭鈴), 막대를 둥글게 굽혀 서로 엇갈리게 한 쌍두령, 부채꼴을 한 오두령(五頭鈴)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들 모두 꿸 수 있는 구멍이 나 있는데다 12㎝ 안팎의 크기를 하고 있어 주의를 끈다.
무덤에서 모두 나오고 있는 팔두령을 비롯한 이들 다두령(多頭鈴)은 우리 나라에서만 내세울 수 있는 특징적인 생김새를 한 의기(儀器)의 하나이자 서로 같은 관계를 가지는 자료로서 주목된다. 시대가 내려온 가야무덤(부산 복천동 22호분, 5세기 전반)에서도 청동칠주령(靑銅七珠鈴, 10.7㎝)이 나오고 있어 또한 시대상으로 비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