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9년(현종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신지제(申之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72년(현종 13) 이민성(李民筬)을 추가배향하고, 1685년(숙종 11) 인근의 사우에 모셔져 있던 김광수(金光粹)와 신원록(申元祿)의 위패를 옮겨와 함께 제향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경현사(景賢祠)·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신문(神門)·전사청(奠祀廳) 등이 있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 (고종 5)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