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장헌주의 아들 장언우(張彦愚)와 문인 이돈룡(李敦龍)이 편집하고, 이듬해 손자 장영재(張永載)가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돈룡의 서문, 권말에 장영재의 발문이 있다.
11권 5책. 석인본. 장서각 도서와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201수, 권2∼5에 서(書) 251편, 권6에 기(記) 25편, 전(箋) 4편, 발(跋) 4편, 묘표 2편, 설(說) 7편, 애사 1편, 장초(狀草) 3편, 전(傳) 6편, 후(後) 13편, 명(銘) 3편, 비음기(碑陰記) 6편, 권7에 잡저 12편, 문(文) 27편, 권8∼10에 행장 31편, 권11에 부록으로 행장·묘지명·연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의 「답김교리서(答金校理書)」는 김매순(金邁淳)과 주고받은 서신으로 자신의 출처(出處: 세상에 나서는 일과 집안에 들어앉는 일)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잡저 가운데 「서유록(西遊錄)」은 1806년(순조 6) 회덕(懷德)으로 송치규(宋穉圭)를 찾아가 학문을 익힌 한 달간의 강학 일기문이다. 태극도(太極圖)·성(性)·이기(理氣)·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심성론(心性論) 및 서사(書舍) 주변의 사건과 학풍 등이 날짜별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정묘서행일기(丁卯西行日記)」는 1807년 송치규에게 예설(禮說)이나 경전 가운데 의심나는 점을 질의하고 강학한 내용을 일기문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논어차록(論語箚錄)」은 『논어』와 『대학』과의 관련 하에서 의심난 곳을 간추려 기록한 것으로 41편이 있다. 「심경차의(心經箚疑)」 는 인심(人心)·도심(道心) 등 5편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향약의(鄕約議)」는 당시 지방관에게 향약 실시에 관련해 개선 내용을 적어 보낸 글이다.
문 가운데 「장흥충렬사백촌김선생봉안문(長興忠烈祠白村金先生奉安文)」은 단종 때 사육신과 함께 순절한 김문기(金文起)는 행적이 당시 삼공(三公)의 반열에 있었던 정분(鄭鄭苯)과 비교해 손색이 없으므로 마땅히 장흥 충렬사에 배향되어야 함을 알리는 내용이다. 「고충장정공문(告忠莊鄭公文)」은 김문기의 배향을 알리는 글로, 김문기의 전기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동리임공추향정예조문(東里林公追享呈禮曹文)」·「애한정암천초정삼선생봉안문(愛閒亭巖川草亭三先生奉安文)」 등은 단종 때 김시습(金時習)과 함께 절의를 지킨 선비들의 행적을 이해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