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 1943년 3월 쉬저우지구(徐州地區)에서 김병학(金炳學)·박상기(朴相基) 등과 항일투쟁을 결의하고 활동하던 중, 1944년 김병학·박상기 등과 함께 한국광복군 제3지대 김학규(金學奎) 지대장 명의의 지하공작원 임명장을 이장식(李張植)을 통하여 전달받았다.
이후 쉬저우지구 공작책임자로서 지하연락망을 구축하는 한편, 김병학·김승조(金承祚) 등과 더불어 학병탈출을 도모하고 일본군의 작전임무를 교란하는 공작에 온 정열을 쏟았다. 1945년에 접어들어 제3지대의 근거지인 푸양[阜陽]에 설치된 훈련대에서 적 점령지구에 있어서 한중합작으로 대적유격전을 전개하고, 한미합작으로 실시계획중인 OSS훈련에 대비한 교육을 받던 중 조국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쉬저우지구군사특파단에 파견되어 변영근(邊榮根)단장을 도와 교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였으며, 그들의 안전귀국을 도모하고 1946년 5월 귀국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