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전 ()

고전산문
작품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칭
이칭
배장화홍련전(裵薔花紅蓮傳), 장애홍련전, 장애홍연전, 장화홍렬전
작품/문학
창작 연도
1818년
작가
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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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장화홍련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전 부인의 자식인 장화·홍련 자매와 계모 허씨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장화는 허씨에 의해 누명을 얻고 죽게 되며 홍련도 장화를 따라 죽는데, 이후 두 자매가 원귀(寃鬼)가 되어 지방 수령을 통해 원한을 푸는 내용이 이어진다.

키워드
정의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구성 및 형식

필사본 · 목판본 · 활자본이 모두 전하며, 이들을 표기 문자에 따라 다시 한문본 · 국문본 · 국한문본으로 나눌 수 있다.

한문본은 전동흘(全東屹)의 6대손 전만택(全萬宅)의 간청에 의하여 박인수(朴仁壽)가 1818년(순조 18) 12월 1일에 쓴 것이다. 효종 연간에 전동흘이 평안도 철산부사로 가서, 배 좌수의 딸 장화(薔花)와 홍련(紅蓮)이 계모의 흉계로 원통하게 죽은 사건을 처리한 사실담(事實談)을 소재로 하여 지었다. 박인수본은 초기 이본에 속하며, 전동흘의 8대손 전기락(全基洛) 등이 1865년(고종 2)에 편찬한 『가재사실록(嘉齋事實錄)』과 전용갑(全庸甲)이 1968년에 편찬한 『가재공실록(嘉齋公實錄)』에 실려 있다.

국문본은 한문본을 대본으로 하여 만든 것이며, 국한문본은 『광국장군전동흘실기(光國將軍全東屹實記)』에 전한다.

국문 필사본으로는 고려대학교 소장본(신암본)과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산본) 등이 있으며, 국문 목판본으로는 자암본(紫岩本), 송동본(宋洞本), 파리 동양어학교본(東洋語學校本) 등이 있다. 활자본은 특징에 따라 세창본(世昌本, 1915년) 계열, 영창본(永昌本, 1915년) 계열, 동명본(東明本, 1915년) 계열로 나뉜다.

이본은 결말 형태를 기준으로 4계열로 나눌 수 있다. 1계열은 장화와 홍련의 억울한 죽음이 알려지고 계모가 처형되는 결말이다. 2계열은 1계열의 결말 뒤에, 계모가 염라대왕의 명으로 온갖 지옥을 돌면서 고난을 겪는 내용으로 끝이 난다. 3계열은 장화와 홍련이 회생한 뒤, 장화가 부사와 혼인하여 장수하는 결말을 보인다. 4계열은 죽었던 장화와 홍련이 배 좌수와 윤씨 사이에 쌍둥이로 환생하여 그 이후의 이야기가 확장된다.

내용

이 작품은 공안류(公案類) 소설인 동시에 가정형계모(家庭型繼母)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글본을 기준으로 줄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세종조에 평안도 철산에 배무룡이라는 좌수가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선녀로부터 꽃송이를 받는 태몽을 꾸고 장화를 낳았다. 그리고 2년 후 홍련을 낳았다. 홍련이 다섯 살 때에 부인이 죽자, 좌수는 대를 잇기 위하여 허씨와 재혼하였다. 허씨는 용모가 추할 뿐 아니라 심성이 사나웠으나 곧 삼 형제를 낳았다. 허씨는 아들이 생긴 후로 장화와 홍련을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장화가 정혼을 하게 되자, 혼수를 많이 장만하라는 좌수의 말에 재물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 장화를 죽이기로 흉계를 꾸몄다. 큰 쥐를 잡아 털을 뽑아서 장화의 이불 속에 넣었다가 꺼내어 좌수에게 보여 장화가 부정을 저질러 낙태하였다고 속였다. 그리고 밤에 아들 장쇠에게 장화를 못에 빠뜨려 죽이라고 하였다.

장쇠가 장화를 못으로 밀자, 그 순간 호랑이가 나타나 장쇠의 두 귀, 한 팔, 한 다리를 잘라가 장쇠는 병신이 되었다. 이에 허씨는 홍련을 더욱 학대하고 죽이려 하였다. 홍련은 장쇠를 통해 언니 장화가 죽은 것을 알았다. 또 장화가 꿈에 나타나 원통하게 죽은 사실을 알려 주자, 홍련은 장화가 죽은 못을 찾아가 뛰어들어 따라 죽었다. 그로부터 그 못에는 밤낮으로 곡소리가 났다. 원통하게 죽은 두 자매가 자신들의 사연을 호소하려고 부사에게 가면 부사는 놀라서 죽곤 하였다. 이러한 일 때문에 부사로 올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정동우(鄭東佑)라는 사람이 자원하여 부사로 부임하였다.

정동우가 부임지에 도착한 첫날 밤에 원귀가 된 장화와 홍련이 나타나 원통하게 죽은 원인을 밝히고 자신들의 원한을 풀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튿날 부사는 좌수 부부를 문초하였다. 좌수 부부는 장화는 낙태하여 투신자살하였고, 홍련은 행실이 부정하여 밤을 틈타 가출하였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또 장화의 낙태물이라고 증거물까지 제시하였다. 정동우는 이를 사실로 여기고 좌수 부부를 훈방하였다.

그날 밤 꿈에 장화와 홍련이 다시 나타나 계모가 제시한 낙태물의 배를 갈라 보면 알 것이라 하고 사라졌다. 이튿날 부사가 그 낙태물을 다시 살피고 배를 갈라 보니 쥐똥이 나왔다. 이에 부사는 계모 허씨를 능지처참하고, 장쇠는 교수형에 처하였으며, 좌수는 훈방하였다. 또한 정동우는 못에 가서 자매의 시신을 건져 안장하고 비석을 세워 혼령을 위로하였다. 그날 밤 꿈에 두 자매가 다시 나타나 원한을 풀어 준 일을 사례하며, 앞으로 승직할 것이라 하였다. 그 뒤 장화와 홍련의 말대로 부사는 승직하여 통제사에 이르렀다.[Ⅰ]

한편 배 좌수는 윤씨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았는데, 꿈에 죽은 두 딸이 나타나 상제가 전세에 못다 한 부녀의 연분을 다시 이으라 했다고 말하였다. 윤씨 부인은 꿈에 상제로부터 꽃 두 송이를 받는 태몽을 꾸고 쌍둥이 자매를 낳았다. 꿈을 생각하여 장화와 홍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두 자매가 장성하여 평양의 부호인 이연호의 쌍둥이 아들들과 각각 혼인하여, 자식을 낳고 복록을 누리며 잘 살았다.[Ⅱ]

한문본과 국한문본의 결말은 [Ⅰ]과 같고, 국문본의 결말은 [Ⅰ]과 장화와 홍련의 환생(還生) 후의 이야기 [Ⅱ]를 합한 것이다.

의의 및 평가

「장화홍련전」은 계모와 전처 자식의 관계에서 빚어질 수 있는 윤리의 문제와 무능한 가장으로 인해 가정이 파멸하는 비극적 모습을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후처제의 제도적 모순과 함께 가장의 무책임을 함께 다룬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계모 허씨를 악인으로, 장화와 홍련을 선인으로 묘사하여 선악의 대립에서 선이 무조건 승리하는 도식적 방향으로 작품을 이끌어 가고 있어 한계를 보인다.

사실 「장화홍련전」에서 계모가 영입되어 가정 내에 갈등이 생기는 상황은 계모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계모가 영입된 가정의 모든 구성원이 화합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한편, 이본인 자암본과 가람본에는 호랑이가 장쇠를 징치하는 부분과 청조(靑鳥)가 홍련에게 장화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부분이 나타난다. 호랑이는 산의 수호자로 무신도에 자주 등장하며, 청조는 신과 인간을 소통시켜 준다. 작품에서 호랑이는 약자의 아픔을 위무하고 강자의 횡포를 징치하며, 청조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다. 따라서 이 두 존재의 등장은 무속적 세계관이 반영된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가재공실록(嘉齋公實錄)』
『가재사실록(嘉齋事實錄)』
『광국장군전동흘실기(光國將軍全東屹實記)』
『조선명신록(朝鮮名臣錄)』
『천안전씨대동보』

단행본

김기동, 『이조시대소설론』(정연사, 1959)
김태준, 『조선소설사(朝鮮小說史)』(학예사, 1939)
박성의, 『한국고대소설사』(일신사, 1964)
신기형, 『한국소설발달사』(창문사, 1960)

논문

김기형, 「〈장화홍련전〉과 무속적 세계관」(『고소설 연구』 21, 한국고소설학회, 2006)
서혜은, 「〈장화홍련전〉 이본 계열의 성격과 독자 의식」(『어문학』 97, 한국어문학회, 2007)
윤정안, 「계모를 위한 변명: 「장화홍련전」 속 계모의 분노와 좌절」(『민족문학사연구』 57,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2015)
전성택, 「장화홍련전 이본고찰」(『논문집』 16, 춘천교육대학, 1976)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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