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28 수복 직후에 명동에서 우연히 만난 유호와 박시춘이 하룻밤 새에 만들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박시춘은 육군 군예대 연예부대인 제2중대의 책임자였고, 이 노래는 그 즉시 군대와 공연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며 인기를 얻었다. 음반 취입은 언제 누가 먼저 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1960년대 음반을 살펴보면 현인이 가장 많이 불렀다.
자연적 단음계의 무뚝뚝하면서도 비장한 느낌의 악곡에, 매 절마다 전우의 죽음을 목도하며 진군하는 비장미가 넘치는 가사를 붙였다. 1절은 연합군이 승기를 잡은 낙동강 전투, 2절은 추풍령, 3절은 한강과 서울수복의 내용을 담고 있고, 4절에서 삼팔선을 향해 나아가는 공간적 흐름을 지니면서, 각 절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 떠오른다 네 모습이 꽃같이 별같이’ 등, 전쟁에서 희생된 전우의 모습을 떠올리는 비극성이 매우 생생하여 크게 사랑받았다. 서울수복 이후 압록강 진군할 때까지 이 노래만 불렀다고 이야기될 정도로 애창된 노래였지만, 바로 이러한 비극성 때문에 퇴각 때에는 군대에서 부르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용맹함과 승리에의 다짐만이 당위적으로 주장되는 여느 군가들과 달리, 전쟁 안에서 불가피하게 죽음과 마주하는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큰 감동을 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6 · 25전쟁을 대표하는 최고의 진중가요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