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효숙(孝叔), 호는 삼성재(三省齋). 할아버지는 종부시영 정흥인(鄭興仁)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정인지(鄭麟趾)이며, 어머니는 판한성부사 이휴(李携)의 딸이다.
1458년(세조 4) 음보로 통례문봉례랑(通禮門奉禮郎)이 되고, 그 뒤 사섬시주부·종친부부전첨(宗親府副典籤)·공조좌랑·종부시소윤·한성부소윤을 거쳐 1465년 지사간원사에 올랐다. 그 뒤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이조·공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으로 하남군(河南君)에 봉해졌다. 1474년 형조참판이 되었고, 1477년 한성부판윤으로 도총관을 겸하였으며, 뒤에 지의금부사를 거쳐 1489년 하남부원군에 진봉되었다. 이듬해 한성부판윤에 재임되었다.
그 뒤 경상도관찰사·경상좌도병마절도사, 1492년 호조판서가 되었으나 수뢰혐의로 파직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어 사섬시제조가 되어 다시 정조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0년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라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경사(經史)에 밝았다. 시호는 장정(莊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