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달부(達夫), 호는 극복당(克復堂).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정도동(鄭道東)이다.
18세 때 이미 경사(經史)에 관통하였다. 권상하(權尙夏)의 문하를 출입하면서 학문을 궁구(窮究)하며, 오직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동문에서 교유한 선비는 이간(李柬)·한원진(韓元震)·윤봉구(尹鳳九) 등인데 모두 학행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죽자 700여명의 주민들이 그의 학행과 효성을 들어 조정에 상신하여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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