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 호는 송계(松溪). 전라남도 보성출신. 1970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기예능보유자인 정권진(鄭權鎭)의 아버지이다.
큰아버지이며 박유전(朴裕全)의 제자인 정재근(鄭在根)과 김세종(金世宗)의 제자인 김찬업(金贊業)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0대에 서울에 올라와 협률사 창극공연활동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며 많은 제자를 길렀다.
좋은 목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목을 얻어 대명창이 되었다. 성대가 굳고 음량이 크지 못하여 극장공연에서는 크게 공연효과를 보지 못하였지만, 실내공연에서는 대단한 기량이 발휘되어 청중을 경탄하게 하였다.
정재근을 통하여 박유전의 「심청가」 · 「수궁가」 · 「적벽가」를 이어받았고, 김찬업을 통하여 김세종의 「춘향가」를 이어받아 전통적인 특성이 강한 정응민제 판소리양식을 개발하여 많은 제자에게 전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김연수(金演洙) · 박춘성(朴春城) · 정권진(鄭權鎭) · 김준섭(金俊燮) · 장영찬(張泳贊) · · 성우향(成又香) · 성창순(成昌順) · 조상현(趙相賢) · 안향련(安香蓮) 등 많은 명창이 나왔다.
그의 소리제는 정권진 · 성우향 · 성창순 · 조상현을 통하여 1970년대 이후 판소리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는 판소리가 비속한 데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였고 기품있는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노력하였으며, 고도의 예술음악으로 발전시키는 데 공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