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8명창 가운데 한 사람이다. 본관은 금성(錦城). 전라남도 함평 출생. 명창 정학진(丁學珍)은 그의 아들이고,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예능보유자인 정광수(丁珖秀)는 손자이다. 천부적으로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음악적 재능이 있어 어려서부터 소리를 잘하였다.
박유전(朴裕全)에게 5년간 배웠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젊었을 때 전주대사습놀이에 참가하여 실수로 낙방한 뒤, 열심히 독공(獨工)하고, 신재효(申在孝) 밑에서 2년간 지도를 받고 다시 대사습놀이에 출연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다. 「심청가」의 한 대목을 너무 슬프게 불러서 좌중이 눈물을 손으로 닦아 비석에 뿌렸더니 물이 흘렀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에 “정창업의 소리에는 비석도 운다. ”는 말이 나왔다. 그는 서편제(西便制)로 소리하였고, 계면조(界面調)를 주로 하여 소리하되 상하성(上下聲)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였으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잘 표현하였다.
또한 「흥보가」를 잘하였고, 특히 그의 더늠으로 전하는 중타령이 유명하다. 고종으로부터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직계를 제수받았다. 제자로는 원각사(圓覺社) 시절에 활약한 김창환(金昌煥)과 그뒤의 정정렬(丁貞烈) · 김정길(金正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