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교 ()

근대사
인물
해방 이후 한국아동문학회 최고위원, 자유문학자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한 아동문학가. 소년운동가.
이칭
일천(一天)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3년(고종 40)
사망 연도
1978년
출생지
서울
정의
해방 이후 한국아동문학회 최고위원, 자유문학자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한 아동문학가. 소년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호는 일천(一天). 서울 출신. 양정고등보통학교(養正高等普通學校)를 거쳐 1922년 정칙학교(正則學校) 고등과를 수료하였다. 1922년 1월 고학생친목회(苦學生親睦會)에 참여하고, 1923년 3월 반도소년회(半島少年會)를 조직해 무산소년운동에 참여하였다.

1925년 5월 소년운동연합단체의 결성을 주도해 사회주의 중심의 오월회(五月會)의 창립을 주도하였다. 이 단체는 그 뒤 경성소년총연맹(京城少年總聯盟)으로 개칭했으나 일제의 불허로 다시 오월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1927년 10월 조선소년연합회(朝鮮少年聯合會)가 창립되자 중앙집행위원 겸 선전조직부장을 맡았고, 1928년 3월 조선소년총동맹(朝鮮少年總同盟)을 조직해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그 해 전남소년연맹사건으로 기소되었다가 금고형에 처해졌고, 1929년에도 체포된 바 있다.

정홍교는 소년운동을 전개하면서 동화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1924년에 『소년주보(少年週報)』, 1927년에 『소년조선(少年朝鮮)』을 창간하였다. 또 1934년에는 『라디오세계』의 주간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정홍교는 방정환(方定煥) 등의 동심주의·민족주의 소년운동과는 노선을 달리해 현실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무산소년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한국소년지도자협회 회장·대한 3·1소년단 중앙총본부 단장·한국아동문학회 최고위원·자유문학자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전국문화단체총연합 최고심의위원·한국아동복지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어린이의 인권옹호와 복리증진에 이바지하였다.

또 일간 『단민보(檀民報)』의 편집국장을 거쳐 1952년부터 1956년까지 『소년시보(少年時報)』를 순간(旬刊)으로 발행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6년에 대한민국 문화훈장, 1971년에 대통령포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소년운동사』(김정의, 민족문화사, 1992)
집필자
최기영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