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이후 죽기 직전까지 쓴 탑파에 관한 논문을 그의 제자 황수영(黃壽永)이 1948년 편집한 책. 이 책은 고유섭이 1936·1939·1940년 세 차례에 걸쳐 『진단학보 震檀學報』에 발표하였던 것과, 이와는 달리 같은 제목의 일본어로 총론과 각론으로 나누어 쓴 것을 기일(其一) · 기이(其二)의 양편(兩篇)으로 엮어 광복 후 을유문화사 조선문화총서 제3책으로 간행하였다. 또, 후자만은 따로 번역되어 1975년 동화예술선서(同和藝術選書)로서 『한국탑파의 연구』로 다시 간행되었다.
고유섭의 짧은 생애에서 남긴 적지 않은 논문 중에서도 이 책을 대표작으로 꼽는데, 그 까닭은 우리의 탑파가 질과 양에서 고문화 유산 중의 으뜸을 차지하며 뚜렷한 특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석탑은 삼국 말에 백제 · 신라 양국에서 발생하여 시원양식을 보였고, 통일신라기에 들어서 그 전형양식을 성립시켜 그 뒤 통일신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변천을 거듭하며 특색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삼국 말기 양식모색의 초기부터 통일신라기에 들어서 전국에 보급된 우리의 고대석탑을 그의 독특한 예술학적 양식론으로 논술하고 있다. 한편, 8세기에 들어서 석탑의 일반형과 다보탑과 같은 변형석탑에 대하여서도 논의하고 있다. 이 책은 석탑을 주제로 삼고 있으나 그 밖에도 황룡사구층탑 같은 목탑, 그리고 소수이지만 경상북도 안동 등에서 유행한 전탑에 대하여서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하나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백제의 석탑에 대한 논의이다. 즉, 한국 석탑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국보, 1962년 지정)과 충청남도 부여의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의 양식고찰에 의하여 연대를 비정(比定)함으로써 일본 학자와는 다른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또한, 통일신라기에 들어서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 또는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과 같은 초기작품과의 연관을 논의하고 있다. 그의 최후의 발표로서 일본예술학회에서의 <조선탑파의 양식변천>(동화예술선서 부록)은 『조선탑파의 연구』와 더불어 주목되는 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