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태조 1) 7월 신반관제(新頒官制)에서는 고려말의 관제를 승습하였다. 이 때 종6품의 주부(注簿)·승(丞)·부사(副使)와 종8품의 주부(注簿)가 있었는데, 이들이 차차 개변되어 1466년(세조 12)에 종6품의 주부(主簿)로 개칭되었다.
그 소속 아문과 구성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경국대전』에 의하면 돈녕부·봉상시·사복시·군기시·관상감·훈련원에 각각 2원, 종부시·사옹원·내의원·상의원·내자시·내섬시·사도시·예빈시·사섬시·제용감·선공감·사재감·장악원·풍저창·광흥창·전의감·의영고·장흥고·양현고·전생서·혜민서·전옥서·사역원·사온서에 각각 1원, 군자감에 3원, 5부에 5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 뒤 조선 후기까지 변동이 없다가 1746년(영조 22)에 이르러 한성부에 새로이 1원을 두었고, 돈녕부는 2원에서 1원, 군자감은 3원에서 1원, 관상감도 2원에서 1원을 감원하였으며, 장악원은 오히려 1원에서 2원, 훈련원은 2원에서 18원이나 증치되었다.
이어 1785년(정조 9)에 한성부는 1원에서 2원으로 증치되고 평시서에 1원이 새로이 설치되었다. 이와 같이 큰 변동 없이 부분적으로 증감이 되거나 치폐가 있어오다가 1865년 조선 말기에 이르면 사옹원은 2원에서 3원, 예빈시·장흥고는 각각 1원에서 2원으로 증치되고, 훈련원은 18원에서 20원이나 증치된 38원으로 개변된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완전히 정비된 주부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그대로 변동 없이 존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