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6년(인조 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이(李珥) · 성혼(成渾) · 김장생(金長生)이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황산사(黃山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5년(현종 6)에 ‘죽림(竹林)’이라 사액되어 서원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조광조(趙光祖)와 이황(李珥)을 추가배향하였다. 1695년(숙종 21) 다시 송시열(宋時烈)을 추가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유허지(遺墟地)에 제단을 마련, 향사를 계속하여오다가 1910년 국권상실과 함께 중단되었다. 그 뒤 1946년 지방유림이 옛 제단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6위(位)의 제단, 유도문(由道門), 홍문(紅門), 4칸의 족리정(足履亭), 4칸의 팔괘정(八卦亭), 정기비각(亭記碑閣) 등이 있다. 제단의 위치는 좌측으로부터 조광조 · 이황 · 이이 · 성혼 · 김장생 · 송시열의 순으로 설치되어 있다.
족리정과 팔괘정은 유림의 회합 및 제관(祭官)의 숙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매년 3월 15일과 9월 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4두(豆)이다. 유물로 약간의 문헌이 전하며, 재산으로는 전답 1,800여 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