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국초에 신라와 태봉의 제도를 병용하였는데 문무의 구분이 없었다. 중부는 태봉관계의 두 번째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이때 수용된 태봉관계는『삼국사기』에 수록된 태봉관계에 나오지 않아 어디에서 취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고려는 곧 두 관계의 병용이 복잡하여 그랬는지 곧 대광(大匡)·정광(正匡)·대승(大丞)·대상(大相)의 호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 관계는『삼국사기』에 보이는 태봉관계인 정광·원보(元輔)·대상·원윤(元尹)·좌윤(佐尹)·정조(正朝)·보윤(甫尹)·군윤(軍尹)·중윤(中尹) 등의 호를 본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