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달수 ()

지달수
지달수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아버지인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과 함께 한국독립군, 임시정부 공작원,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이달수(李達洙)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9년
사망 연도
1969년
본관
충주(忠州)
출생지
서울
정의
일제강점기 때, 아버지인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과 함께 한국독립군, 임시정부 공작원,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충주(忠州). 일명 이달수(李達洙). 서울 출신.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池靑天)의 맏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건너가 길림성의 검성중학교(儉成中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오상현(五常縣)에서 농촌청년들에게 항일독립사상을 계몽하던 중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군사조직인 한국독립군(韓國獨立軍)에 입대해 총사령관인 아버지 밑에서 복무하였다. 9 · 18사변이 일어나자 한국독립군은 중국호로군(中國護路軍)과 연합군을 편성해 항일전투를 적극적으로 전개했는데, 쌍성보(雙城堡)를 둘러싼 세 차례의 전투에 참가해 무공을 세웠다.

1933년 영안현(寧安縣) 구국군 총사령관 왕더린[王德林]부대와의 연합작전에서는 소대장으로 징보후[鏡泊湖] · 우린쯔[武林子] · 주자툰[朱家屯] 전투에 참가하는 등 크고 작은 20여 회의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1933년 중국중앙군관학교 제2분교에서, 1934년 중국군관학교 뤄양분교[洛陽分校]한국인특별반에 입학해 군사교육을 받았다. 1936년 임시정부에서 화북 · 평수지구공작단원(華北平綬地區工作團員)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중앙위원 겸 쑤이위안성[綏遠省] 당위원장을 역임하다가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편성에 참여하였다. 1941년 2월에는 광복군 제2지대 2구대장으로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지대장 공진원(公震遠) 및 유해준(兪海濬) 등 간부와 더불어 장자커우[張家口]시내에 침입해 10여명의 청년을 포섭해 지하조직망을 굳혔다.

이후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의 편입에 의한 광복군의 조직개편 이후 제2지대 2구대 구대부(區隊附)로 배속되어 초모훈련 및 항일선전에 힘을 쏟다가 조국광복을 맞았다. 귀국 후 한국광복군전우회 · 한국광복군동지회 · 대한독립동지회 등에서 임원을 역임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유공자공훈록』5(국가보훈처, 1988)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독립운동사』4·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1975)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박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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