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원에는 995년(성종 14)에 일직원(日直員)으로 좌승선·우승선·좌부승선·우부승선 각 1인을 두었다고 하는데, 이때에는 지주사의 명칭이 보이지 않는다.
지주사가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문종 때 중추원의 관제를 정비하면서 정3품의 지주사를 두어 승선방의 장관을 삼고부터이다. 그 뒤 1276년(충렬왕 2) 중추원을 밀직사(密直司)로 고칠 때,『고려사』백관지에는 다만 승선을 승지로 개정하였다고 하였을 뿐 지주사를 무엇으로 고쳤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고려사』세가 충렬왕 4년 10월의 임명기사에 송빈(宋玢)을 밀직사 지신사(知申事)로, 박구(朴球)를 우승지로, 김주정(金周鼎)을 좌부승지로 삼은 것을 보면 이때 지신사로 고쳤음이 확실하다.
1298년에는 충선왕이 즉위하여 밀직사를 광정원(光政院)으로 고치고, 지신사를 도승지로 개칭하여 종5품으로 격하하였으나 충렬왕이 복위하자 곧 밀직사로 고치고 도승지를 지신사로 환원하였다.
1310년(충선왕 2)에 승지를 대언(代言)으로 고쳤으나 지신사는 그대로 두었다. 1356년(공민왕 5) 밀직사를 추밀원(樞密院)으로 고쳐 문종 때의 지주사로 돌아갔다가 1362년 다시 지신사로 고쳤다. 1369년에 다시 지주사로 고쳤다가 1372년 다시 지신사로 개변을 되풀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