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은 법적 혹은 제도적 용어는 아니며, 국민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공공기관에 대하여 어떤 유리한 조처를 취하여줄 것을 희망하는 공식·비공식의 의사표시를 종전부터 관용해온 명칭에 불과하다.
따라서, 진정은 본질적으로 비제도적·법외적(法外的)인 것이며, 그 내용이나 형식(서면·구술)·표제(標題)에 관계없이 이러한 내용의 의사표시는 모두 진정으로 불리고 있다. 이 점에서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으로 제도화된 청원(請願)과는 개념상 차이가 있다.
진정이라는 용어는 ≪후한서≫·≪초사 楚辭≫ 등에 이미 보이나, 이때의 뜻은 단순히 어떤 사정을 사실대로 알린다는 것에 불과하고, 오늘날과 같이 국가기관에 대하여 어떤 조처를 요구하는 의사표시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진정이 오늘날의 의미로 전용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다른 제도 및 법령용어와 함께 수입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전에는 국왕에 대한 상소(上疏)와 지방관에 대한 소지(所志) 등이 오늘날의 진정과 같은 기능을 하였다. 특히 상소는 그 내용이나 형식, 제출자의 자격 등에 거의 제한이 없이 국민 누구나 국정 전반에 관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진정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하겠다.
즉, 오늘날 대의제도나 주기적인 선거제도·국민투표제도 등을 통하여 국정에 민의가 반영되며, 사법제도를 통하여 국민의 권리구제가 실현되고, 그래도 부족한 것은 청원과 그 밖의 민원처리제도에 의하여 국민의 의사가 남김없이 국정에 반영되도록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비제도적인 진정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우리 국민이 서구로부터 이입된 근대적 통치기구나 그 제도적 장치에 익숙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상소제도의 맥을 잇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진정을 보다 손쉽게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은 개념상 청원과 구별된다. 즉, 청원은 국민이 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기관에 대하여 불만이나 희망을 표시하고 그 시정을 요구하는 의사표시로서, 청원을 할 수 있는 권리[請願權]는 <헌법>에서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로 되어 있다.
<헌법>의 규정에 따라 <청원법>이 제정되어 있으며, 이에 따르면 청원은 그 내용·형식·제출절차 등에 관하여 일정한 제한을 받고, 적법한 청원에 대하여 국가기관은 수리(受理)·심사·처리·통지의 의무를 진다.
이에 대하여 진정은 그 내용·형식·제출절차 등에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것으로, 진정서라는 표제를 붙였더라도 위에 말한 청원요건에 해당되면 이는 청원으로 처리된다. 실제로는 진정의 대부분은 청원에 해당되고, 따라서 <청원법>에 따라 처리된다.
문제는 청원에 해당되지 않는 진정인데, 이에 대해서 이를 규율하는 법규가 없으므로, 그 처리도 접수기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문서에 의하지 않은 진정이나 형사재판의 피고인에 대하여 관용을 호소하는 진정(청원의 경우에는 재판에 간섭하는 내용은 금지된다)은 청원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와 같은 진정이 부적법한 것으로서 금지되는 것은 아니며, 일반의 민원사항으로서 그 내용에 따라 처리되는 것이다.
즉, 접수기관은 진정의 내용을 실현할 의무는 물론 이를 심사, 처리할 의무도 원칙적으로 없다. 다만, 국회에 대한 진정의 경우에는 <진정서 등 처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일정한 범위 안에서 심사·처리 및 통지의 의무가 부과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