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선도 ()

자연지리
지명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섬.
정의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섬.
개설

동경 128°02′, 북위 34°51′에 위치하며, 남해도의 삼동면 해안에서 지족해협을 사이에 두고 약 1㎞ 떨어져 있으며, 창선도와 삼동면은 창선교를 통해 연결된다. 우리나라에서 아홉번째로 큰 섬이며, 모양은 남해도와 비슷하다. 면적은 54.18㎢이고, 해안선 길이는 107.34㎞이다. 동서간 길이는 11.5㎞이고, 남북간 길이는 10.5㎞이다. 1980년 6월에 창선교를 통해 남해도와 연결되었으며, 2003년에는 창선-삼천포대교를 통해 사천시와 연결되었다.

자연환경

북쪽에서 남쪽으로 만입한 동대만(東大灣)이 섬을 동서로 거의 이등분하며, 서쪽이 동쪽보다 약간 길고 크다. 서부는 동부보다 험준하며, 구릉성 산지가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 있다.

서남부 중앙에 대방산(臺芳山, 468m)이 있는 반면 동부는 망치산(望峙山, 268m)이 제일 높고, 대체로 100m 이하의 구릉과 저지가 분포한다. 해안은 암석해안이 대부분이고, 해안선이 복잡하나 수심은 얕다. 섬의 남동쪽은 드나듦이 복잡하고, 서쪽은 비교적 완만하다.

연평균기온 14.5℃, 1월 평균기온 2.6℃, 8월 평균기온 25.6℃, 연강수량 1,0812㎜이다. 온난한 기후로 아열대성 식물이 자라며, 한약재로 쓰이는 비자나무를 비롯하여 유자·치자꽃 등이 자생한다.

형성 및 변천

삼국시대에는 유질부곡(有疾部曲)이었다. 고려 현종 때 창선현으로 진주에 속하였고 1269년(고려 원종 10)에는 일본이 이곳 변경을 침탈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해 5월 이곳에 간직하였던 국사를 진도로 옮겼으며, 고려 충선왕 때 흥선(興善)이라 고쳐졌다. 1470년(성종 2)에 창선도리가 되었으며, 1604년(선조 37)에는 삼천포 말문리에 병합되었다. 1906년에 남해군에 이속되어 남해군 창선면 소속이 되었다.

현황

2016년 기준으로 인구는 6,827명(남 2,797명, 여 4,03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2,980세대이다. 취락은 당저리·부윤리·진동리 등 대체로 섬 중앙부와 동쪽의 평지 및 해안가에 집중 분포한다. 주민들은 어업보다 농업에 치중한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 7.12㎢, 밭 5.13㎢, 임야 37.28㎢이다. 주민들은 어업보다 농업에 치중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고구마·마늘·콩 등이 생산되며, 마늘은 생산량이 많아 농업협동조합을 통해 출하된다. 연근해에서는 낙지·문어·볼락·게 등이 어획되며, 새조개·굴 등의 채취와 피조개 양식이 활발하다.

교통은 남해도를 비롯하여 사천시로 연결되어 국도와 지방도가 섬을 통과한다. 연도교 및 연육교의 개통으로 육지와의 교통이 아주 수월해졌으며 관광객의 수도 크게 증가하였다. 창선도와 남해도 사이의 지족해협에서는 죽방렴을 이용한 멸치잡이가 발달하였다. 섬 북쪽의 대벽리의 왕후박나무는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창선초등학교, 창선중학교, 창선고등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남해통계연보』(남해군, 2017)
『한국지지: 지방편 Ⅲ』(건설부 국립지리원, 1995)
『도서지』(내무부, 1985)
국토해양부 연안포탈(www.coast.kr)
남해군청(www.namhae.go.kr)
집필자
손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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