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06년 유림들의 발의로 건립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7년 일본군이 훼철시킨 것을 1935년에 재건하였다.
그러나 1943년 또다시 일본에 의하여 훼철되고 해방 후 1947년 다시 복원하였으나 퇴락하여 1975년 해체 복원하였다. 사당 주위를 담장으로 둘렀으며 입구는 3칸의 솟을 삼문으로 꾸몄다. 사당은 이벌대의 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면규모를 이루고 있는데 정면칸은 개방된 퇴칸으로 이루어졌다.
지붕은 정면과 배면쪽으로만 면이 구성된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측면의 박공부에 풍판을 달아 목재 마구리(직각으로 자른 끝면)의 부식을 방지했다. 전면은 서까래위에 각이 진 부연을 덧달아 처마를 길게 빼낸 겹처마이고 배면은 서까래로만 이루어진 홑처마이다.
가구는 오량가(五梁架)를 이루고 내부의 중앙에 면암선생의 위패와 그 옆 배면벽에 길이 2m, 폭 1m의 영정(影幀)이 보존되어 있으나 영정의 시대와 작자는 미상(未詳)이다. 내부 좌측면에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인 최면식(崔勉植)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