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 같은 특별한 천변이 나타나면, 관상감은 즉시 그것을 관측하여 그 현상이 나타나는 동안 매일 관측 기록을 적어 천변측후단자를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 이 보고단자는 4통씩 제출하는데, 이를 모아서 정리하여 책으로 묶어 보관한 것이 그 성격에 따라 『성변등록(星變謄錄)』·『객성등록(客星謄錄)』, 또는 넓은 뜻으로 『천변등록』 등으로 불렸다.
1910년 조선왕조가 망하면서 이런 기록들은 거의가 없어졌으나, 그 가운데 극히 일부는 인천측후소 도서실에 옮겨져 보관되었다. 당시 남아 있던 『천변등록』은 1661년(현종 2) 1월, 1664년 10∼12월, 1667년 1∼2월, 1695년(숙종 21) 10월, 1702년 2월, 1723년(경종 3) 9월, 1759년(영조 35) 3월과 12월에 걸친 부분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마저 광복과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 모두 사라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일부라 여겨지는 자료가 1978년 발견되었다. 이들 자료는 1723년 9월, 1759년의 3월과 12월분으로 전에 남아 있던 것들 가운데 마지막 세 토막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의하면 혜성이 나타나면 즉시 측후관들이 동원되고, 필요한 물품을 신청하였는데, 매일의 측후관 명단과 공급물자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첫 혜성의 경우 27일 동안에 54명, 다음의 경우 25일 동안에 35명, 마지막 혜성의 경우 11일 동안에 21명의 연인원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의 관측이 규모도 크고 철저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