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실의』는 중국 북경에서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가 한역하여 1603년에 간행한 천주교 교리서이다. 상·하 2권이며, 8편 174항목에 걸쳐 중국의 선비와 서양의 선비가 대화로 토론하는 형식으로 꾸며졌다. 유교 교양을 바탕으로 천주교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천주교 신앙의 몇 가지 중요한 교리, 특히 본질적인 문제만을 다루어 신앙과 계시에 도달하도록 이론을 폈다. 중국 고대사상과 서구 윤리사상이 융합된 내용을 담고 있고, 동양문화권에 그리스도교 가치체계를 첨가하는 시발을 이룬 점에서 사상사·문화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상 · 하 2권. 모두 8편으로 나누어 174항목에 걸쳐 서사(西士)와 중사(中士)가 대화를 통하여 토론하는 형식으로 꾸며진 가톨릭교리서이며 호교서(護敎書)이다.
중사는 중국사람을 대변하는 박학다식의 학자이고, 서사는 가톨릭사상과 스콜라철학을 겸비한 서양학자로 저자 자신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전자의 입을 빌려 전통유학의 사상과 불교 · 도교를 논하게 하고, 후자가 스콜라철학과 선진공맹(先秦孔孟)의 고전을 들어 천주교의 교리를 펴고, 그 사상을 이론적으로 옹위(擁衛)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화형식을 빌려 진술된 문장은 사서육경과 그 밖의 경전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유교적 교양을 바탕으로 천주교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유교서뿐만 아니라 불교 · 도교서도 자주 활용하여, 견강부회(牽强附會)하지 않고 차근차근 타이르듯이 이끌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승복하지 않을 수 없게 꾸며져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마테오 리치가 중국 학예(學藝)에 얼마나 통달하였는가를 엿볼 수 있다.
고어(古語)를 구사하고 성어(成語) · 성구(成句)는 가급적 오랜 원형을 찾아 사용하였고, 고사(故事)의 내력을 광범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을 편술한 시기는 1593(선조 26)∼1596년으로 보이나, 정식 간행된 것은 저자가 북경(北京)에 거주하게 된 뒤인 1603년의 일이다.
그 뒤 제2판이 발리냐노(Valignano, 范禮安) 신부의 주선으로 광둥성(廣東省) 사오저우(韶州)에서 1604년에 간행되고, 1607년 쟝수성(江蘇省) 저장(浙江)에서 이지조(李之藻)에 의하여 제3판이 나왔다. ‘천주실의’라는 책이름은 ‘De Deo Verax Disputatio’를 번역한 것으로, 직역하면 ‘하느님에 대한 참된 토론’이라는 뜻이다.
내용은 천주교 신앙의 모든 문제를 다루지 않고 몇 가지 중요한 교리, 특히 본질적 문제만을 다루어 마침내 신앙과 계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론을 폈고, 이를 인간의 이성과 자연적인 식견으로 입증하며 전개해 놓았다.
상권의 제1편에서는 천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그것을 주재하는 존재임을 논증하면서, 천주의 교의(敎義)가 참된 교의임을 증명하고 있다.
제2편에서는 불교 · 도교를 논박하고, 유교에 대하여는 제1질료(第一質料)라 할 태극설(太極說)을 제하고는 대체로 찬동하는 논리를 폈다. 실체(實體)와 우연을 설명하면서 신은 모든 완전성을 지닌 실체임을 역설하고, 중국 고대사상에서의 상제(上帝)의 성격을 11종의 중국 고대문헌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제3편에서는 천국의 필요성을 말하고 식물의 생장력, 동물의 감각력, 인간의 지적 영혼(知的靈魂)의 차이를 명확히 규정하고, 그것의 단성(單性) · 영성(靈性) · 불멸성(不滅性)을 논증하고 있다.
제4편에서는 중국 고전에서 예를 지적해 가며 고대신령(古代神靈)에 대한 신앙을 논증하여 인간 영혼이 신령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능과 불능의 차이를 보여주고, 악마와 지옥의 기원에 대한 범신론적 일신론(汎神論的一神論)을 논박하였다.
하권의 제5편에서는 윤회설의 창시자가 피타고라스(Pythagoras)이며 불교가 그것을 채용하여 윤회설을 중국에 전한 것이라고 하고, 만물이 모두 인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므로 불교에서 살생을 금함이 옳지 않음을 밝혔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재계(齋戒)의 동기와 본질을 설명하였다.
제6편에서는 참된 뜻에서의 소망과 두려움의 정당성을 밝히고, 그것은 사후(死後)의 상벌로만 옳게 실현됨을 강조하고, 지옥 · 천국 및 연옥에 관한 교리를 설명하며 이에 대한 비방을 논증적으로 반박하였다.
제7편에서는 천주에 대한 인간성과 선악, 자유의지와 인간의 목적을 설명하고, 천주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주축으로 하는 그리스도교설을 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가장 확실한 지식이고, 사랑은 가장 고귀한 덕행임을 설명하고, 종교적 무관심주의의 오류를 갈파하였다.
제8편에서는 유럽의 관습과 천주교 성직자들의 독신제를 설명하고, 중국에서의 잡다한 종교생활을 개탄하면서 중국 고대는 사정이 달랐음을 밝히고 있다.
끝으로, 원죄(原罪)를 말하고 천주강생(天主降生)과 신법공포(神法公布)를 설명하고, 진리의 생활을 원하는 사람은 『천주교해략(天主敎解略) Doctrina Christiana』으로 공부하고 천주교에 귀의하여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우주만물에는 창조주와 주재자가 존재하여 끊임없이 만물을 안양(安養)하고 있으며, 둘째 인간 영혼은 불멸한 것으로 후세에 각자의 행실에 따라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응징이 있음을 밝혔다.
셋째 불교의 윤회설을 배격하고 오로지 사랑의 그리스도교 신앙만이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고, 중국 고경(古經)에 이미 이와 같은 가르침이 밝혀져 있으니 공부하고 귀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는 『천주실의』가 비록 이질문화인의 저술이나 중국인에게 큰 영향을 준 양서로 보고, 이를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하게 하였다.
마테오 리치는 이 책에서 현세에서의 윤리 · 도덕 실천의 가치를 인간 당위성에서 논하는 공자(孔子)의 유교사상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하면서 천주교설을 폈고, 우상론적인 불교와 도교를 논박하여 중국사상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
또한, 고등호교론(高等護敎論)과 교리해설에 있어 일방적으로 서구 교회학자들의 이론이나 논증만을 구사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한문 독파력을 통하여 이해, 체득한 중국 고대문헌을 적절하게 사용하며 중국 지식인들을 설복하였다.
그는 신념을 갖고 불교와 도교의 허구와 오류를 공박하였다. 유교에 대해서는 다만 태극설만을 배격하였으며, 윤리면의 일치, 우상숭배의 배격, 상제 · 천주의 합일성에서 그리스도교와의 전이가 가능하다는 보유론적 이해(補儒論的理解)를 폈다.
이러한 『천주실의』의 논리에 대하여 유 · 불 · 도교자들의 반박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중국에서는 종진지(鍾振之)의 『천학초징(天學初徵)』 · 『천학재징(天學再徵)』 등 척사론(斥邪論)의 논설이 쏟아져 나왔고, 이런 역사적 문헌을 수합한 『벽사집(闢邪集)』이 나왔다. 또 일본에서도 1861년 같은 성격의 책으로 『벽사관견록(闢邪管見錄)』이 간행되었다.
한편, 천주교 내에서도 마테오 리치의 보유론적 그리스도교리 해설은 영합주의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는 반박이 일어나, 뒷날 중국교회에서 배공제조(拜孔祭祖)의 해석문제로 전례문제(典禮問題)가 야기되는 불씨가 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1603년 북경에서 출간된 뒤 상당히 빠른 속도로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동북아시아 각국으로 유포되었다. 즉, 출간 다음해인 1604년에 이미 일본에 전해졌고, 우리 나라에서도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에 상 · 하 8편의 편목이 소개되고 촌평이 실려 있다. 같은 시대 이수광(李睟光)도 『지봉유설』에서 편목을 대략 열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면 『천주실의』는 출간 20년 내 외교관계로 북경을 출입하는 사대사행원(事大使行員)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 들어와, 일부 유교지식인 사이에 열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다른 한역서학서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열독되고 논평되었다.
이익(李瀷)이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을 지어 이 책에 대한 큰 관심을 일으키자 그의 학문을 따르던 신후담(愼後聃) · 안정복(安鼎福) · 이헌경(李獻慶) 등이 『천주실의』와 그 밖의 서교서(西敎書)를 읽고 각기 『서학변(西學辨)』 · 『천학고(天學考)』 · 『천학문답(天學問答)』 등을 엮어 유학적 관점에서 예리하게 논평하였다.
이와 반대로, 『천주실의』에 담겨져 있는 천주교교리를 이해, 소화하여 마침내 천주교신앙에 도달하게 된 학자들도 있었다.
이벽(李檗) · 권일신(權日身) · 정약용(丁若鏞) · 이승훈(李承薰) 등이 천주교신앙 실천운동을 일으켜, 1784년(정조 8) 조선천주교회를 창설하게 된 데에도 이 책이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한자로 엮어진 『천주실의』는 일반대중에게는 가까이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에 따라 한글 번역본이 나왔는데, 18세기 중엽의 한글 고사본(古寫本)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 책은 동북아시아 유교전통사회에 가톨릭신앙을 심어 준 책이며, 중국 고대사상과 서구 윤리사상의 습합논리(習合論理)의 첫 작품이었고, 동양문화권에 그리스도교 가치체계를 첨가하는 시발을 이룬 점에서 사상사 · 문화사 · 종교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