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6.9m. 199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칠층석탑과 바로 뒤쪽에 서 있는 청량사지오층석탑(보물, 1998년 지정)은 속칭 계룡산남매탑(오뉘탑)이라 불리고 있다.
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7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부를 장식한 점이나, 전체적으로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 형태로서 각 부에 여러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형태로 주목된다. 2매석으로 구성된 하대석 위에는 우주와 면석을 별석(別石)으로 조성한 면석을 조립하였다. 기단갑석은 2매석으로 결구되었는데 다른 부재에 비하여 돌다듬기 수법이 거칠고 밑면에 부연 등이 없으며 별다른 조각장식도 없는 단순한 형태이다. 탑신부는 초층탑신이 1매석으로 조성되었는데 한 면 중앙부에는 직사각형(61×34㎝, 깊이 17㎝)의 감실이 마련되었으며 다른 한 면에는 감실을 조성하다가 만 듯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초층탑신석 위에는 2매의 별석으로 조성한 옥개석받침부가 있다. 초층옥개석은 투박한 2단의 층급 받침이 있고 바로 앞의 오층석탑에 비하여 낙수면의 경사가 심한 편이며 상면에는 간결한 1단의 굄이 있어 그 위층의 탑신석을 받도록 하였다. 2층탑신은 나중에 끼워맞춘 석재이며 2층옥개석은 초층옥개석과 같은 수법이나 초층옥개석에 비하여 낙수면의 경사가 좀더 심한 편이다.
3층탑신도 나중에 끼워맞춘 석재이며 3층옥개석은 초층 옥개석과 같은 수법이다. 4층탑신도 마찬가지이며 옥개석도 같은 수법이다. 5층탑신은 2매석으로 구성되었고 양 우주가 모각되었으며 5층옥개석은 초층옥개석과 같은 수법이다. 6층탑신은 1매석으로 조성되었고 양 우주가 모각되었으며 6층옥개석은 초층옥개석과 같은 수법이다.
7층탑신은 1매석으로 조성되었고 양우주가 모각되었으며 7층옥개석은 초층옥개석과 같은 수법이다. 7층옥개석 위를 장식한 상륜부는 노반석 하나가 남아 있으며 다른 부재는 결실되었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건조수법으로 보아 미륵사지 석탑(국보, 1962년 지정)에서 익산왕궁리 오층석탑(국보, 1997년 지정)으로 이어져 오는 석탑 건조양식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으며 백제계 석탑양식에 신라계 석탑양식이 가미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석탑의 각 부재가 일부 결실되어 훗날 끼워맞춘 부분이 있으나 이들 석재는 모두 근년에 보완한 아니어서 석탑의 인상을 크게 그르치고 있지는 않다.
이 석탑은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부재가 생략되고 세부 조각수법이 정연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의 시대적 조형수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귀중한 석탑이다. 특히 바로 앞의 오층석탑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에서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으로 이어지는 백제계 석탑 건조양식의 특징을 보여 주는 데 대하여 이 칠층석탑은 미륵사지석탑으로부터 비롯된 백제계 양식을 계승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주의를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