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은 대청댐 수몰지역에 포함됨에 따라 1977년 말 충북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청원가호리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는 돌무지무덤과 간석기와 민무늬토기가 껴묻혀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및 돌널무덤이 조사되었고, 이 밖에 선돌 1기가 확인되었다. 돌무지무덤은 6∼8㎝ 두께로 7층으로 돌이 쌓여 있었다. 맨 밑에는 7개의 큰 강돌을 깔아놓아 칠성판·칠성신앙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된다.
묻힌 사람의 머리는 북북서 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유구의 크기로 보아 굽혀묻기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돌무지 사이에서는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굵은 금무늬토기〔太線文土器〕조각이 검출되어 신석기시대의 무덤으로 생각된다.
남해안의 동삼동식 토기가 이 지역에서 출토된 점은 문화의 북상 전파로를 밝히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인돌은 이미 파괴되어 전형을 알 수 없으나 굄돌의 형태로 볼 때, 북방식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돌방의 남쪽 마구리돌 옆에서 간돌칼과 화살촉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발굴 당시 동쪽 굄돌 옆에서 쇠뿔잡이 1점이 수습되었고, 돌방 밖에서는 가락바퀴조각 1점과 돌끌조각 2점을 비롯해 민무늬토기조각이 다량으로 채집되었다. 한편, 덮개돌에서는 246개의 성혈(性穴)이 확인되었다. 이 고인돌은 유구의 방향으로 보아 묻힌 사람의 머리방향이 물의 흐름과 같은 북북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널무덤은 고인돌 서쪽에서 2기가 발굴되었다. 제1호분은 판돌을, 제2호분은 모난돌을 세워 널을 만들었다. 제2호분에서는 일단병식(一段柄式)의 간돌검 1자루가 출토되었다.
선돌은 전체적인 모습이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있었다. 고인돌을 쳐다보는 위치에 조영되어 있어 고인돌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유적은 한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돌널무덤·선돌이 같이 조사되어 무덤간의 상호관계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