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사람으로 원보(元甫) 김긍률(金兢律)의 딸이며, 정종의 제3비 청주남원부인(淸州南院夫人)과 자매간이다.
청주는 신라 오소경 가운데 서원경(西原京)이 있던 곳으로 일찍부터 지방관부와 학교를 따로 설치, 운영할 수 있을 만큼 독자적 지방세력이 그 기반을 구축하여 왔던 곳이었다.
그리고 태조가 고려를 건국한 직후 청주인의 반란이 여러 차례 시도되었을 정도로 반고려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태조는 여러 차례 청주에 행차하여 이 지역의 민심수습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
청주지방 호족의 딸이 왕실과 혼인을 맺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태조의 노력이 결실된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혜종은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의 처제를 동생인 왕요(王堯: 정종)와 혼인시켰는데, 이는 당시의 정국동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종대에는 왕권이 미약하여 왕규(王規)와 아우들이 왕위계승경쟁을 벌였는데, 이를 무마하기 위하여 혜종은 자신의 처제를 동생의 배필로 삼게 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