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지종(摠持宗)은 조선 초기 11종파의 하나이다. 1406년(태종 6) 의정부의 계(啓)에 11종파 중에 총지종이 기록되어 있다. 이듬해 통페합된 7종파 중에는 총남종(摠南宗)이 들어 있는데, 이는 총지종과 남산종(南山宗)이 합쳐진 것이다. 총지종에서는 천신사, 창화사, 삼화사, 만연사, 보광사, 서봉사, 현고사, 천왕사 등 8개 사찰이 자복사(資福寺)로 소속되었다.
『삼국유사』의 ‘혜통항룡(惠通降龍)’에는 신라 문무왕 때 당(唐)나라에서 귀국한 혜통(惠通)이 밀교의 교풍을 떨쳤으며, 천마산(天摩山)의 총지암(摠持庵)과 모악산(毋岳山)의 주석원(呪錫院) 등이 밀교에 속한 사찰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총지암은 곧 총지사를 가리키므로 혜통을 총지종의 개조(開祖)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총지종이 신라 때 독립된 종파로 성립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총지종이 성립된 시기는 고려 전기와 고려 후기일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1007년(목종 10)에 『보협인다라니경』을 간행한 총지사가 탑신앙을 이끌었던 점이나,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병을 치유하기 위해 총지사에 갔다가 거기에서 입적한 사실이 있다. 이에 의거해 목종 이전에 총지종이 종파로 성립했고 문종 이전에 종파적 특징이 확립되었다고 파악한다.
또는 고려시대의 문헌에서도 지념업(持念業)은 보여도 총지종은 보이지 않다가, 조선 태종 때 지념업은 보이지 않고 총지종이 보인다. 이로 미루어 보아, 고려에서는 지념업으로 통칭되어 오다가 후기에 이르러 총지종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총지’는 다라니(陀羅尼)를 번역한 말로 '선법(善法)을 간직하여 잃지 않고 악법(惡法)을 일으키지 않는 힘'을 뜻한다. 이는 염(念) · 정(定) · 혜(慧)를 체(體)로 삼으며, 진언밀어(眞言密語), 즉 명주(明呪)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즉 모든 참되고 신비스러운 말씀과 심오한 우주의 진리를 모두 다 간직하고 있다는 뜻에서 총지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총지종은 진언 밀교(眞言密敎)임을 알 수 있다.
인도에서 밀교가 성립된 뒤, 선무외(善無畏) · 금강지(金剛智) · 불공(不空) 등의 인도승이 중국으로 들어와 진언종(眞言宗)이 형성되었다. 그 뒤, 불가사의(不可思議) · 의림(義林) · 혜일(惠日) 등의 신라 고승들이 밀교의 진리를 국내에 전하였다.
그로부터 밀교가 신라와 고려에 크게 전파된 것 같으나 어떠한 형태로 종파가 성립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지념업이나 총지종이라는 이름으로 밀교가 하나의 종파 구실을 한 듯하나 그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고려시대 총지종의 승려들이 선종(禪宗) 계통의 승려들처럼 선사(禪師) · 대선사(大禪師)의 법계(法階)를 받았다. 그리고 총지종 승려들은 질병 치료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다라니 염송을 통해 밀교 의례에 참여했다. 조선 초 내도량으로서 밀원(密院)이 존재했는데, 총지종 승려들은 그곳의 소속으로 치료 활동을 행했다. 그래서 나중에 선 · 교 양종으로 종단이 폐합되었을 때, 총지종과 남산종을 합하여 성립되었던 총남종이 선종에 들어갔던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