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明朗)은 신라 문무왕대의 승려로 신인종(神印宗)의 조사(祖師)이다. 632년 당나라로 들어갔다가 3년 뒤에 귀국하였다. 경주의 원원사(遠願寺), 개성 현성사(現聖寺), 천마산 총지암(總持庵)과 모악산의 주석원(呪錫院)은 신인종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명랑의 신인종을 계승한 고승으로는 안혜(安惠)와 낭융(朗融) 및 광학(廣學)과 대연(大綠) 등의 4대덕(四大德)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모악산의 주석원은 명랑의 신인종을 대표하는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권제5 신주6 혜통항룡(惠通降龍)조에 의하면, “고승(高僧) 명랑이 용궁(龍宮)에 들어가 범문(梵文)에 문두루(文豆蔞)라고 하는 신인(神印)을 얻어 신유림(神遊林)을 처음으로 세우고 여러 차례 이웃나라의 침입을 물리쳤다. 또한 화상은 무외삼장(無畏三藏)의 골자(骨子)를 전하고 속세를 두루 다니면서 사람을 구제하고 만물을 감화(感化)시켰다. 겸하여 숙명(宿明)의 밝은 지혜로 절을 세워 원망을 풀어주었고, 밀교(密敎)의 교풍이 이에 크게 떨쳤다. 천마산(天磨山) 총지암(總持嵒)과 모악(母岳)의 주석원(呪錫院) 등은 모두 그 지류(支流)이다”라고 되어 있다. 주석원이 있었던 곳이 어디인가를 두고서는 모악산 북쪽 산기슭에 있는 달성사라는 주장과 동쪽 산중턱에 있는 대원사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