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인명석가상광배는 일본 법륭사에서 국립동경박물관에 헌납한 48체불(體佛)이라고 하는 아스카·나라시대[飛鳥奈良時代]의 금동불 가운데 하나로 주형(舟形) 광배만 남아 있다. 광배에 남아 있는 구멍의 흔적으로 볼 때 원래는 대좌와 본존 및 협시보살이 있는 일광삼존불 형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광배의 뒷면에는 해서체(楷書體)로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에 의하면, 왕연손(王延孫)이 현재 부모의 정토왕생을 위하여 석가불상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왕연손이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고구려나 백제의 불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광배 명문에 보이는 갑인년은 594년 또는 654년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명문에 보이는 생생세세와 견불문법이라는 표현을 감안해 볼 때 594년설이 좀 더 유력해 보인다.
명문의 내용은, “갑인년 3월 26일에 제자 왕연손이 현재 부모를 위하여 금동석가상 한 구를 공경하며 조성한다. 소원하는 것은 부모가 이 공덕에 힘입어 현재의 몸이 편안하고 태어나는 세상마다 삼도(三途)를 거치지 않고 여덟 가지의 어려움을 멀리 떠나 속히 정토에 태어나서 부처를 보고 불교의 법을 듣게 하소서”라고 되어 있다.
광배 뒷면에 새겨져 있는 7행 59자의 명문에서 상당수 서체(書體)는 당시 중국에서 사용하지 않는 이체자(異體字)로 되어 있다. 이러한 갑인명석가상광배의 연원과 제작국에 대해서는 북조 영향을 받은 고구려 제작설과 남조 영향을 받은 백제 제작설로 양분되어 있는데, 고구려 계통의 제작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갑인명석가상광배에 표현된 단층탑과 천인을 6세기 무렵 중국에서 제작된 유물들과 비교하고, 현재 남아 있는 삼국시대 단층탑의 양식을 함께 분석하여 갑인명석가상광배가 남조의 영향을 받은 백제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제기되어 있다. 이러한 견해를 따를 경우, 백제에서 제작된 갑인명석가상광배는 남조의 불교문화가 백제를 통해 일본으로 전해지던 고대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양상을 보여주는 유물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