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사지는 충남 부여 부소산성 서측의 산록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 폐사지는 백제의 왕궁으로 추정되는 관북리(官北里) 유적지와 가까운 곳에 있다. 발굴 결과 강당이 없다는 점과 탑지에서 금동제의 과판(銙板)이 출토된 점 등으로 볼 때, 백제 왕실이나 귀족층의 원당격인 사원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연화문와당이나 기타 유물들을 통해 볼 때, 백제 후기의 사원으로 추정되는데, 백제 멸망과 함께 불타 없어진 사찰로 보인다.
서복사지는 1942년에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중문(中門)과 목탑(木塔) 및 금당(金堂)과 회랑(回廊)이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강당이 없는 특수한 사찰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당시 발굴조사로 수습된 유물은 소조불두(塑造佛頭), 도금풍탁(鍍金風鐸), 벽화토괴편(壁畵土塊片), 연화문와당(蓮花文瓦當), 치미편(鴟尾片) 등으로 현재 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한 개의 치미는 복원되었다. 이후 1980년 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서 다시 발굴하면서, 금당지와 중문지 및 목탑지 등이 밝혀졌다. 또한 목탑지 중앙의 심초석 자리 옆에서 금동과대(金銅銙帶)의 판과(板銙) 7개가 출토되었다. 두 번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부소산 서복사지에서는 백제시대에 국한된 당대의 유물만 출토되었을 뿐, 다른 시대와 겹치는 유물과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로 볼 때, 백제시대 창건사찰로서 계승되다가 백제 멸망기에 폐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복사지는 출토유물의 내용이나 강당이 결여된 가람 배치에서 일반적인 사원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특수한 사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입지조건도 평지 가람이 아닌 산지 가람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또한 궁성 유적지로 추정되는 부소산 남쪽 숲 일대와 인접하였다. 부소산성은 당대에 그 성격이 궁원(宮苑)에 속한 궁실의 후원과 같은 역할이었다면 궁성에 속한 사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부소산 서복사지의 전체적인 입지는 북쪽과 동쪽이 높은 지형을 이루고 서쪽과 남쪽은 시야가 트여서 백마강이 굽어 보이는 위치에 있다. 또한 북으로부터 금당, 목탑, 중문의 순서로 기단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백제 단탑식계를 따르는 가람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