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비 ()

목차
고대사
유물
신라 중대 김용행(金用行)이 찬한 아도(阿道)에 관한 비.
이칭
이칭
아도화상비(我道和尙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신라 중대 김용행(金用行)이 찬한 아도(阿道)에 관한 비.
개설

아도는 고구려로부터 신라로 불교를 전해주기 위해 지금의 선산일대에서 활동했던 승려이다. 이러한 아도는 선산지역의 모례라는 신도를 후견인으로 하면서 신라 왕성에 불교를 전도한 승려로 후에 신라 불교 초전자로 추모되었다. 신라 중대에 한나마(韓奈麻) 김용행이 아도화상비의 비문을 찬술하면서 추모하였다. 신라 하대에는 흥륜사 금당에 십성을 봉안하고 추모할 때에 동쪽 벽에 앉아 서쪽을 향한 소조상의 첫번째로 모셔졌다. 이때부터 국가적 추모대상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박인량이 『수이전』에서, 각훈은 『해동고승전』에서, 고득상은 영사시에서,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그의 행적을 남기고 추모하였다. 17세기에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있는 도리사에 아도화상사적비가 세워졌다.

내용

아도비는 ‘아도화상비’라고도 불린다. 현재 전하지는 않는다. 다만, 『삼국사기』신라본기 법흥왕 15년조와 『삼국유사』흥법편에 아도비와 관련한 내용이 전한다. 이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현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비문의 찬자는 한나마 김용행이다. 특히 『삼국유사』흥법 아도기라조에는 찬자를 알 수 없는 아도본비(我道本碑)를 인용하여 전하고 있는데 그 관련성을 짐작해볼 만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이차돈 순교유적과 유물에 대한 고찰」(김태형, 『불교미술사학』11, 2011)
「신라 불교 전래 양상과 아도」(한기문, 『안동사학』9·10, 2005)
「신라 불교의 민간 수용에 대한 일고찰; 일선군 모례를 중심으로」(김덕원, 『신라사학보』1, 2004)
「신라하대 흥륜사와 금당 십성의 성격」(한기문, 『신라문화』20, 2002)
「삼국유사에 실린 아도본비의 작성시기」(김창호, 『경주사학』20, 2001)
「신라하대 전기 흥륜사 금당십성의 봉안과 미륵하생신앙」(곽승훈, 『한국사상사학』11, 1998)
「신라 십성고」(김영태, 『한국학연구』2, 1977)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