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는 고구려로부터 신라로 불교를 전해주기 위해 지금의 선산일대에서 활동했던 승려이다. 이러한 아도는 선산지역의 모례라는 신도를 후견인으로 하면서 신라 왕성에 불교를 전도한 승려로 후에 신라 불교 초전자로 추모되었다. 신라 중대에 한나마(韓奈麻) 김용행이 아도화상비의 비문을 찬술하면서 추모하였다. 신라 하대에는 흥륜사 금당에 십성을 봉안하고 추모할 때에 동쪽 벽에 앉아 서쪽을 향한 소조상의 첫번째로 모셔졌다. 이때부터 국가적 추모대상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박인량이 『수이전』에서, 각훈은 『해동고승전』에서, 고득상은 영사시에서,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그의 행적을 남기고 추모하였다. 17세기에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있는 도리사에 아도화상사적비가 세워졌다.
아도비는 ‘아도화상비’라고도 불린다. 현재 전하지는 않는다. 다만, 『삼국사기』신라본기 법흥왕 15년조와 『삼국유사』흥법편에 아도비와 관련한 내용이 전한다. 이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현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비문의 찬자는 한나마 김용행이다. 특히 『삼국유사』흥법 아도기라조에는 찬자를 알 수 없는 아도본비(我道本碑)를 인용하여 전하고 있는데 그 관련성을 짐작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