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성(隋城). 자는 백승(伯承), 호는 고송(孤松). 아버지는 예조좌랑 최희열(崔希說)이며, 어머니는 탐진최씨(耽津崔氏)로 진사 최학령(崔鶴齡)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행의가 엄격하여 사람들이 최찬의 앞에서는 어긋난 일을 하기를 두려워하였다.
1614년(광해군 6) 영창대군(永昌大君)이 살해되자 「애대군가(哀大君歌)」를 지어 애통한 심정을 표현하였다. 또한, 「운전가(耘田歌)」 2편을 지었는데, 이것은 영창대군의 죽음과 이이첨(李爾瞻) 등 간당의 발호를 김매는 일에 비유하여 한탄한 노래이다.
이 때 고향사람 김우성(金佑成)이 이이첨과 결탁하여 문생인 진명생(陳命生)에게 「운전가」에 한나라 양운(楊惲)의 「남산가(南山歌)」처럼 임금을 원망하고 비방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고변하게 하여 금부에 갇혔다가 심한 옥고 끝에 풀려났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예빈시직장(禮賓寺直長)으로 임명되었으나, 교지가 도착되기 전에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인하여 죽었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저서로 『고송유고(孤松遺稿)』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