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강유고 ()

추강유고
추강유고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백낙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8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백낙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8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이섭(李燮)이 편집해 놓은 것을 1958년 백낙관의 족손 백창균(白彰均)과 사림(士林)들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장면(張勉)의 추강실기(秋江實記) 서문과 김창숙(金昌淑)의 추강유집(秋江遺集) 서문, 권말에 이섭의 초본(草本) 발문과 심상직(沈相直)의 발문, 손자 백인기(白仁基)의 소서(小敍)가 있다.

서지적 사항

3권 1책. 신연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앞에 유상(遺像)과 유상찬(遺像贊) 2편이 있고, 권1에 시 70수, 권2에 소(疏) 3편, 서(書) 13편, 서(序)·초기(草記)·제문·찬(贊) 각 1편, 행장 2편, 통문 2편, 추설(錐說)·추설(追說) 각 1편, 권3에 부록으로 전후전교급비답(前後傳敎及批答) 1편, 대원군서(大院君書) 2편, 고종실록소재(高宗實錄所載)·조선사소재(朝鮮史所載) 각 1편, 제현증시(諸賢贈詩) 27수, 만사선(挽詞選) 21수, 제주유생추모제시운(濟州儒生追慕祭時韻) 2수, 축문·행장·비명·기념비문·묘지명·유장총론(遺狀總論)·실기(實紀)·제주추념제급귤림단건설시발기인(濟州追念祭及橘林壇建設時發起人)·경모회통문급발기인(景慕會通文及發起人)·보령군5열사추념제시발기인급제관(保寧郡五烈士追念祭時發起人及祭官)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옥중풍야(獄中風夜)」는 저자가 척화로 인해 3차 추국(推鞠)을 당한 뒤 남간(南間: 의정부의 사형수 감옥)에 갇혔을 때 지은 것이다. 「절명시(絶命詩)」는 1883년(고종 20) 참혹한 형을 당하기에 앞서 지은 것으로 우국충정이 잘 나타나 있다.

소의 「척왜화소(斥倭和疏)」는 1879년에 올린 것으로, 왜적이 통상 교역한다는 명목으로 흉계를 품고 우리의 물자를 걷어 가고 요해처를 차단하며 허실을 엿보는데, 신하들은 도리어 화친을 주장해 국가를 팔아먹으려 한다고 지적하고, 어진 자와 능한 자에게 책임을 맡기고 요해처를 지켜 국가를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척간의소(斥奸擬疏)」에서는 영의정 이최응(李最應)이 천총(天聰)을 가리고 태학(太學)을 위협하며 충언기모(忠言奇謀)를 상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팔도의 선비들이 모두 울분하고 있으나, 임금의 지친이라 배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왕에게 먼저 수신해서 조정과 만민을 바로잡고, 인의로 성곽을 삼으며, 충효로 갑병(甲兵)을 삼는다면 누구도 두렵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척화재소(斥和再疏)」는 1882년 올린 것으로, 왜적들이 조선을 망하게 할 자는 대원군(大院君)이라는 참언(讖言)을 유포해 왕과 이간질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삼키려는 수작이라고 지적하고, 민겸호(閔謙鎬)·민태호(閔台鎬)·민창식(閔昌植)·이유원(李裕元)·이최응·이재면(李載冕)·김보현(金輔賢) 등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밖에도 서(書)의 「상대원군(上大院君)」·「상민보국태호서(上閔輔國台鎬書)」·「여최면암익현서(與崔勉庵益鉉書)」·「추설(錐說)」 등은 당시의 국제 정세와 국내외 정치·사회 문제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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