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봉의산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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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봉의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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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봉의산(鳳儀山)에 있는 삼국시대 포곡식 석축 성곽. 산성.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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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봉의산(鳳儀山)에 있는 삼국시대 포곡식 석축 성곽. 산성. 시도기념물.
내용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소양로 1가 산 1-1 일원으로서 춘천의 진산(鎭山)으로 알려진 봉의산(300.7m)에 있는 고대산성이다. 산성은 현 충원사[구 봉의사] 앞의 계곡에서 서쪽으로 뻗어 남동쪽 봉의산 정상부근 옆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길게 뛰어 나온 돌출부를 감아 돌며 북쪽을 지나 다시 충원사 앞 계곡에서 마주치는 형태로 상부 능선을 따라 자연지세를 최대한 활용하여 축성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성의 전체 길이는 1,284m이며, 평면형태는 부정형이다. 성벽은 편마암 계통의 자연석을 일정한 크기로 다듬은 장방형 석재를 사용해 모맞추어 바른층쌓기로하여 내탁식으로 쌓았으며, 미세한 크기로 퇴물림쌓기 기법을 보이고 있다. 성벽의 높이는 붕괴되어 일정치 않으나 지형지세가 험난함에도 성곽의 규모에 비해 5~6m 정도 다소 높게 축조된 구간도 있다.

봉의산성에 대한 문헌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봉산고성(鳳山古城)’이라는 명칭과 함께 둘레가 2,463척(尺)이라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고, 『고려사』에는 1217년(고종 4) 거란족 침입에 따른 춘주[지금의 춘천] 함락과 안찰사 노주한(盧周翰)이 죽임을 당했다고 전하며, 『고려사절요』에는 1253년(고종 40) 몽골군 침입시 민 · 관 · 군이 이 산성에 들어가 항전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이 산성에 대해서는 1993년 정비복원을 위한 정밀지표조사가 이루어져 18개소의 건물지가 지표에서 확인되었으며, 이후 2004년 체계적인 정비 방안 및 향후 조사계획 수립을 위한 산성내 일부 건물지 발굴조사가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시행되었다. 조사결과, 화재로 인해 일시에 폐기된 3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6세기 후반 또는 7세기 초엽에 해당하는 신라토기를 비롯해 나말여초~고려 중기의 기와류, ‘西面(서면)’ · ‘面官(면관)’ · ‘面造(면조)’ · ‘官草(관초)’ 등의 글자가 새겨진 명문기와, 토기류, 자기류, 금속류, 중국 송나라 동전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2호 건물지에서 출토된 6세기 후반경의 신라토기들은 봉의산성의 최초 조영시기가 통일기 이전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고고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탄화목을 방사성탄소연대 측정한 결과 1240±60BP부터 840±40BP까지 연대치가 다양하게 나왔다.

봉의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673년(문무왕 13) 수약주(首若州, 지금의 춘천) 주양성(走壤城) 축성 기사를 근거로, 주양성의 실체로 지목되고 있으며, 신라의 춘천지역 진출시기에 일시적인 군사적 거점으로 활용되다 통일기에는 삭주(朔州, 지금의 춘천)의 중심 치소성으로 운영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춘천봉의산성은 삼국시대 신라 산성의 축성기법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산성내 건물지에서 6세기 후반경의 신라토기들이 출토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춘천의 우두산성(牛頭山城)과 함께 신라의 춘천지역 진출시기에 전략적 주요 거점성으로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당시의 역사적 변동상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 중의 하나이다. 또한 고려 후기 거란과 몽고 침입시에 입보용산성으로 활용된 항전유적지로서 그 의미와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성곽·봉수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강원문화재대관: 도지정편Ⅱ』(강원도, 2006)
『춘천 봉의산성 발굴조사 보고서』(강원문화재연구소, 2005)
『춘천 봉의산성 지표조사 보고서』(춘천시, 1993)
「명주와 삭주의 치소성」(이상수, 『강원의 신라 문화와 역사』, 국립춘천박물관, 2013)
「고대 춘천지역의 관방시설에 대하여」(유재춘, 『춘천 맥국의 재조명』, 강원향토문화연구회, 2006)
「봉의산성 소고」(심재연, 『춘주문화』 15, 춘천문화원, 2000)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이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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