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하나.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李夢龍)이 퇴기(退妓) 월매(月梅)의 딸 춘향과 사랑하다가 헤어진 뒤, 춘향이 남원 신임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다가 옥에 갇힌 것을 이몽룡이 전라어사가 되어 구한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사설의 문학성이나 소리의 음악성으로 보아 가장 예술성이 높고 청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마당일 뿐만 아니라 사설의 길이도 가장 길어서 한마당을 모두 부르는데 짧은 바디는 5시간, 긴 바디는 8시간이 걸린다.
<춘향가>는 조선 중기에 이미 불렸을 것으로 짐작되나, 1754년(영조 30)유진한(柳振漢)이 지은 ≪만화집 晩華集≫의 <춘향가>가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꼽힌다.
그 밖에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 觀優戱>, 장지완(張之琬)의 <광한루시 廣寒樓詩>, 신위(申緯)의 <관극시 觀劇詩>,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지 松南雜識≫, 윤달선(尹達善)의 <광한루악부 廣寒樓樂府>, 이유원(李裕元)의 <관극팔령 觀劇八令>등이 있다.
순조 때 명창 송흥록(宋興綠)이 <춘향가>에서 ‘옥중가(獄中歌)’를 잘 불렀고, 그의 ‘옥중가’ 더늠이 오늘날까지 전하여진다.
또 순조 때 명창 염계달(廉季達)의 더늠으로 ‘남원골 한량(閑良) 대목’·‘돈타령’·‘네그른 내력’, 고수관(高壽寬)의 더늠으로 ‘자진 사랑가’, 모흥갑(牟興甲)의 더늠으로 ‘이별가’·‘날 다려 가오’, 송광록(宋光綠)의 더늠 ‘긴 사랑가’가 전하여오고 있다.
철종 때 명창 박유전(朴裕全)·이석순(李錫順)·박만순(朴萬順)·이날치(李捺致)·김세종(金世宗)·장자백(張子伯) 등이 <춘향가>로 이름을 떨쳤고, 고종 때 명창 황호통(黃浩通)·박기홍(朴基洪)·정정렬(丁貞烈) 등이 <춘향가>를 잘 불렀다.
오늘날 전승되는 <춘향가> 바디에는 박봉술(朴奉述)이 보유하고 있는 송만갑 바디, 정권진(鄭權鎭)이 보유하고 있는 정응민(鄭應珉) 바디, 김여란(金如蘭)이 보유하고 있는 정정렬 바디, 정광수(丁珖秀)가 보유하고 있는 김창환(金昌煥) 바디, 오정숙(吳貞淑)이 보유하고 있는 김연수(金演洙) 바디가 있으며, 박동진(朴東鎭)도 <춘향가>를 짜서 전판 공연한 바 있다.
그 밖에 많은 바디는 전승이 이미 끊어졌거나 거의 끊어지고 있다. 지금 전승되고 있는 여러 <춘향가>바디 가운데 송만갑 바디, 정응민 바디, 김창환 바디가 다른 바디보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춘향가>는 바디마다 짜임새가 얼마쯤 다르게 되어 있으나 흔히 ‘초앞’·‘광한루 경치’·‘책방독서’·‘백년가약’·‘이별가’·‘신연(新延)맞이’·‘기생점고(妓生點考)’·‘십장가(十杖歌)’·‘옥중가’·‘과거장(科擧場)’·‘어사행장(御史行裝)’·‘춘향편지’·‘옥중상봉’·‘어사출도’·뒤풀이로 짜여진 경우가 많다.
특히 <춘향가>에서 이름난 소리대목은 ‘적성가(赤城歌, 진양―우조)’·‘천자(千字)뒤풀이(중중모리―평조)’·‘춘향방경치(중모리 또는 세마치―우조)’·‘긴 사랑가(진양―우조)’·‘자진 사랑가(중중모리―추천목)’·‘이별가(진양―계면조)’·‘신연맞이(자진모리―우조)’·‘기생점고(진양―우조·중중모리―평조)’·‘군노사령(軍奴使令, 중중모리―설렁제)’·‘옥중가(진양―계면조)’·‘과거장(자진모리―우조)’·‘농부가(중모리―계면조)’·‘박석틔(진양―우조)’·‘어사와 장모(중중모리―계면조·경드름)’·‘옥중상봉(중모리―계면조)’·‘어사출도(자진모리―우조·계면조)’를 꼽을 수 있다.
<춘향가>는 화평한 장면, 슬픈 장면, 위풍당당한 장면, 우스운 장면이 고루 나뉘어 있고 진지한 대목과 우스운 대목이 고루 짜여 있다. 음악 또한 이와 같은 사설의 극의 내용에 따라서 장단과 조가 변화 있고 고르게 짜여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명창들이 대목마다 이름난 더늠을 많이 남겨놓고 있어서 음악적으로도 잘 짜여진 마당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