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공신은 이성계(李成桂)가 즉위하여 잠저(潛邸) 때 시종(侍從)의 공이 있던 문무양반·잡리(雜吏)·천례(賤隷) 등을 광범위하게 논공행상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원종공신 1등은 양반, 2·3등은 잡인(雜人)으로 구분하였으며, 태종 때에도 많은 원종공신이 탄생하였다. 공신이라고 할 때 원종은 포함시키지 않기도 한 것은 그만큼 수가 많아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기의 개국(開國)·정사(定社)·좌명(佐命) 3공신의 정공신(正功臣)에 한하여 교서(敎書)와 녹권(錄券)을 주었으며, 원종공신에게는 녹권만 주었다. 원종공신의 아문(衙門)은 1456년(세조 2) 6월 충익사(忠翊司)를 두고, 7월 이속(吏屬)으로 영(令)·사(史) 10인을 정원으로 하여 1년 간격으로 1인씩 9품으로 거관(去官)하였다.
이 해 8월 충익사에 도사 2인을 두고 원종공신과 그 자손을 임명하였다가 1466년 충익사를 충익부(忠翊府)로 승격시키고, 종2품 아문으로 하여 도사 2인을 그대로 두었다.
1506년(연산군 12) 충익부의 도사를 혁파하고, 충익사라 격하하여 무록관(無祿官) 2인을 두었다가 그 뒤 충훈부(忠勳府)에 병합되고, 광해군 때 잠시 독립관청이 되었다가 곧 병조에 소속되었으며, 인조 때 충훈부, 1676년(숙종 2) 병조, 1680년 충훈부, 1689년 다시 병조 등으로 폐합되었다가 1699년 충훈부에 합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