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댐에서 약 3km 떨어진 남한강 하류 쪽에 위치한 대규모의 선사시대 유적이다. 당시 이곳은 밭이었으나 1990년 9월 10일에 내린 집중호우로 남한강 기슭의 퇴적층위가 깎여나가면서 빗살무늬토기와 간 돌검, 돌도끼 등 많은 석기 유물이 드러난 것을 이곳 밭주인이 발견함으로써 조동리 선사유적의 존재가 알려졌다.
조동리 선사유적은 8,811㎡에 이르며, 크게 세 지구로 나누어진다. 1지구는 동량면사무소 앞의 충적대지이고, 2지구는 남한강 하류 지점, 3지구는 철교 서쪽의 남한강변 충적대지 일대이다. 1996년 3월부터 2000년까지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세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동리 선사유적은 2002년 10월 25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05년 11월 9일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유적과 유물을 보존하고 소개하기 위해 조동리 선사유적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조동리 선사유적의 퇴적층위는 4개의 문화층으로 나뉘며, 이보다 아래는 자연퇴적층이다. 문화층인 제3 · 제4 퇴적층은 상 · 하위 신석기시대 문화층이고, 제2퇴적층은 청동기시대 문화층이다.
신석기시대 문화층에서는 다량의 빗살무늬토기와 돌도끼, 그물추 등 생활에 필요한 연모와 볍씨가 출토되었다. 이와 함께 연대 값을 알 수 있는 숯도 출토되었다. 빗살무늬토기는 짧은 빗금무늬, 생선뼈무늬 등 10여 가지의 무늬가 있고 바탕흙과 제작 수법, 문양 형태 등에서 한강 · 금강과 남해안 계통의 토기와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문화층에서는 유구가 확인되지 않았다. 신석기시대 아래층에서 출토된 숯 시료를 통한 절대 연대값은 5,295±545B.P.로 측정되었다.
청동기시대층에서는 집터 6기, 불탄 자리 17기, 수혈(竪穴) 11기, 돌무지 1기, 우물 1기(근대) 등 모두 35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집터의 형태는 네모꼴 · 긴네모꼴 · 타원형 · 둥근꼴 등 4가지가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불탄 자리 17기의 구조는 특별한 시설없이 바닥을 오목하게 판 수혈 형태, 바닥을 약간 파고 강돌과 깬돌을 이용해 둥글게 2∼3겹 쌓아 만든 돌무지형태, 자갈돌을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돌려놓아 만든 돌돌림 형태 등으로 나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돌돌림 형태 중 길죽한 자갈돌을 원형으로 돌려놓아 만든 불탄 자리 2개를 서로 이어 ‘안경테모양’과 같은 꼴을 갖춘 것(청동기 아래층)이다. 수혈의 형태는 원형 · 타원형 · 긴네모꼴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붉은 굽 잔토기,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 팽이형 토기, 가지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 등 다양한 토기류와 그물추, 화살촉, 돌보습, 돌도끼, 갈판, 찍개, 가락바퀴 같은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특히 각종 석기류는 당시 생활 연모가 발달했음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쌀 · 보리 · 밀 · 조 · 도토리 · 복숭아씨 등 곡물과 열매, 씨앗 등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에 대규모 취락을 형성하고, 농경과 어로 등 생산경제 활동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 위층에 있는 제1호 집터는 2,700±165B.P., 제1호 불땐 자리는 2,995±135B.P.로 나왔다.
조동리 선사유적은 신석기시대 문화층과 청동기시대 문화층이 잘 보존되어 있다. 신석기시대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다량 출토되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충청북도 지방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농경과 어로 등 생활 활동과 관련된 연모가 다수 출토되었으며, 곡물과 열매씨앗 등이 다수 조사되었다. 또한 청동기시대에 이곳에 대규모 취락을 형성하고 활발한 생산경제 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동리 선사유적은 중원 지역의 선사시대(신석기~청동기) 문화와 생산경제 등의 학술적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