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군 ()

대동여지도 중 경상북도 군위, 성주, 칠곡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북도 군위, 성주, 칠곡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북도 남서부, 낙동강의 중류에 위치한 군.
정의
경상북도 남서부, 낙동강의 중류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군위군·대구광역시, 서쪽은 성주군·김천시, 남쪽은 대구광역시, 북쪽은 구미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8°16′∼128°38′, 북위 35°52′∼36°07′에 위치한다. 면적은 450.93㎢이고, 인구는 12만 282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읍, 5개 면, 203개 행정리(73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에 있다.

자연환경

태백산맥의 지맥이 북동으로 연장되면서, 가산(架山)을 거쳐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군의 동북부를 형성하고, 서쪽으로는 도립공원인 금오산(金烏山)이 구미시와 경계를 이룬다. 군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지질이 중생대 백악기의 경상계(慶尙系) 퇴적암으로 되어 있다. 팔공산의 화강암과 접하는 부분에는 변성암이 분포한다.

중앙부에는 가산(架山, 902m)과 유학산(遊鶴山 또는 遊嶽山, 839m)·황학산(黃鶴山, 782m)·소학산(巢鶴山, 622m)·작오산(鵲烏山, 303m)·숲데미산(519m)·기반산(岐般山, 465m)·장원봉(莊元峰, 372m)·백운산(白雲山, 713m)·우계산(466m) 등이 솟아 있다.

북쪽으로는 천생산(407m)·봉두암산(鳳頭巖山, 327m) 등이, 남쪽으로는 명봉산(402m)·도덕산(道德山, 660m) 등이 솟아 각각 구미시와 대구광역시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낙동강 서쪽은 지질이 고생대의 화강편마암으로 되어 있고, 금오산(977m)·영암산(鈴巖山, 782m)·서진산(棲鎭山, 742m)·봉화산(468m)·도고산(349m) 등이 솟아 김천시·성주군과의 동쪽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천으로는 낙동강 서쪽의 금오산 남쪽사면과 영암산 북쪽사면에서 발원하여 북삼읍·약목면을 관류하여 동류하는 경호천(鏡湖川)이 면 중앙을 가로질러 동류하는 두만천(頭滿川)과 약목면 덕산리에서 합류하여 관호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기산면 중앙을 관류하여 동류하는 서원천(書院川)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동쪽에서는 가산면을 흐르는 한천(漢川)과 석적읍 북부를 서류하는 광암천(廣巖川)이 낙동강에 흘러든다. 동명면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팔거천과 지천면을 남북으로 관류하는 이언천(伊彦川)이 남류하다가 금호강(琴湖江)으로 흘러든다.

낙동강의 주변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으며, 경호천은 유역에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여 북삼읍의 북삼들, 약목면의 약목들을 전개시킨다.

기후는 연교차가 큰 남부내륙형이며, 연평균기온 14.8℃, 1월 평균기온 0.8℃, 8월 평균기온 25.8℃이며, 연강수량은 1222.4㎜이다.

역사

이 지역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 중기부터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경상북도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석적읍 중리에서 구석기시대 중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이는 르발루아첨기(Levallois尖器)·돌망치·찍개(chopper) 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에도 이 곳에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 유물·유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삼한의 군미국(軍彌國)이 이 곳에 위치했던 것으로 비정된다. 이들 소국의 행방은 알 수 없으나, 일찍부터 백제와 신라의 영토확장으로 인해 양국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결국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신라 때에는 사동화현(斯同火縣)·대목현(大木縣)·팔거리현(八居里縣)이 설치되었다. 이 후 757년(경덕왕 16)에 각각 수동현(壽同縣)·계자현(谿子縣)·팔리현(八里縣)으로 개칭되어 수동현과 계자현은 성산군(星山郡: 星州)에, 팔거리현은 수창군(壽昌郡)에 속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견훤(甄萱)과 왕건(王建)의 세력이 경쟁적으로 이 지역에 진출하였다. 927년(태조 10) 견훤이 신라를 공략하고 귀환하는 길에 계자현 들판에 쌓인 곡물을 불태웠다고 한다.

고려 초에 수동현이 인동현(仁同縣)으로, 계자현이 약목현(若木縣)으로, 팔리현이 팔거현(八居縣 또는 八莒縣)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인동현과 팔거현이 경산부(京山府: 星州)의 속현으로 되었다.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약목현 역시 경산부에 내속(來屬)하였다.

고려 말에 이르러 1390년(공양왕 2)에는 인동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약목현도 겸임하였다. 한편, 1031년에 만들어진 약목현의 정도사(淨兜寺) 오층석탑의 조성기(造成記)는 고려 초 지방사회의 구조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 초에 인동현에는 감무 대신 현감(縣監)이 파견되었으며, 약목현은 인동현의 속현으로, 팔거현은 성주목의 속현으로 되었다. 당시 이곳의 토지는 절반만이 비옥했고 풍속은 검소했으며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호구수는 657호 4,551인이었다.

1593년(선조 26)경에 경상도 감영이 일시 팔거현으로 옮겨지면서 이 지역이 중요시되었다. 그 결과 1604년에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의 요청에 따라 천생산성(天生山城)이 축조되고 인동현이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640년(인조 18)에는 팔거현에 가산산성이 축조되면서 팔거현이 칠곡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이처럼 좁은 지역에 2개의 도호부가 설치된 것은 이 지역이 경상도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감영인 대구를 방비할 수 있는 천연적인 요새였기 때문이다.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 때 23부제가 실시됨에 따라 칠곡군과 인동군으로 개편되어 대구부에 속하였다. 다음해에 13도제가 실시되자 다시 경상북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인동군이 폐지되었고 그 관할구역은 칠곡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시기에 항일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이 지역 인사들도 많이 참여하였으며, 이러한 항일의식은 1919년의 3·1운동으로 이어져 인동·약목·석적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49년 8월 13일왜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6·25전쟁 때에는 대구를 함락하기 위한 북한군의 주력이 이 곳을 공격해와 낙동강을 경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때 아군은 가산면 다부동전투에서 북한군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기는 쾌거를 올렸다.

1973년 7월 1일북삼면 낙계동이 선산군 구미읍으로 편입되었고, 1974년 11월 1일약목면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6년 4월 1일가산면으로 승격되었다. 1978년 2월 15일에 인동면 일원이 구미시로 편입되었고, 1980년 12월 1일칠곡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이듬해 대구직할시로 편입됨으로써 군세가 크게 약화되었다. 1987년 1월 1일선산군 장천면 석우리가 가산면에 편입되었고, 1988년 5월 1일 동이 이로 개칭되었으며, 1989년 1월 1일가산면 신장리가 선산군 장천면으로 편입되었다. 2003년 7월 1일북삼면이 북삼읍으로 승격되었고, 2006년 10월 1일석적면이 석적읍으로 승격되었다.

유물·유적

선사시대의 유적으로는 지천면 창평리의 신동입석(경상북도 기념물 제29호)과 왜관읍 석전리, 지천면 심천리, 석적읍 중리, 동명면 금암리·기성리 등에 지석묘가 있다.

삼국시대의 고분으로 기산면 봉산리, 약목면 복성리·무림리, 지천면 심천리 고분군과 동명면 금암리의 북실고분군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복성리고분은 1960년에 발굴, 조사되어 토기·철기 등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산성으로는 가산면 가산리의 가산산성 (사적, 1971년 지정)과 기산면 각산리의 박집산봉수대(朴執山烽燧臺)의 유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동명면 구덕리의 송림사(松林寺), 약목면 남계리의 용화사(龍華寺), 왜관읍 석전리의 흥국사(興國寺) 등이 있다. 사지로는 1031년(현종 22) 기명(記銘)의 오층석탑 조성형지기(造成形止記)가 발견된 것으로 유명한 약목면 남계리의 정도사지가 있다.

이 밖에 송림사의 송림사오층전탑(보물, 1963년 지정), 동명면 기성리의 칠곡기성리삼층석탑(보물, 1969년 지정), 송산리 석불좌상, 북삼읍 숭오리의 선봉사대각국사비(보물, 1963년 지정), 기산면의 성주노석리마애불상군(보물, 1979년 지정), 지천면 영오리 석불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지천면 신리의 사양서원(泗陽書院)과 사양서당강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창평리의 녹봉정사(鹿峰精舍), 기산면 평복리의 소암서원(嘯巖書院), 석적읍 중리의 봉양서원(鳳陽書院)·화산서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북삼읍 숭오리의 어필각(御筆閣), 약목면 남계리의 숭무사(崇武祠)·신유장군유적(경상북도 기념물, 1982년 지정) 등이 있다.

어필각에는 장복추(張福樞)가 지은 「어필각상량문(御筆閣上樑文)」, 허훈(許薰)이 지은 「어필각기(御筆閣記)」가 보관되어 있다. 고가옥은 왜관읍 석전리에 묵헌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1년 지정), 매원리에 해은고택(경상북도 민속문화재, 2013년 지정) 등이 있다.

한편, 북삼읍 율리의 조정종손가소장전적(보물, 1989년 지정), 왜관읍 낙산리의 가실성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이 있다. 도립공원의 일부인 가산산성과 경북팔경 가운데 첫째인 금오동천(金烏洞天)이 북삼읍 숭오리에 있다. 왜관읍 낙산리의 왜관금무봉 나무고사리화석포함지(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가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651년(효종 2)에 설립된 사양서원과 1588년(선조 21)에 설립된 소암서원 외에도 봉양서원 등이 있어 많은 유생들을 배출하였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10년 진평교회(眞坪敎會)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극명학교(克明學校)가 최초로 개교했는데, 이는 이 지역이 일찍부터 기독교가 뿌리내린 곳이기 때문이다.

그 뒤 천주교에서 설립한 순심고등학교(純心高等學校)와 순심여자고등학교가 있어 이 고장의 교육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1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7개교, 경북과학대학교와 대구예술대학교가 있다.

이 밖에 6·25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던 낙동강 다부동전투에서 순국한 호국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기념관이 석적읍 중지리와 가산면 다부리에 있어 반공교육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화시설로는 1968년 개원한 칠곡문화원을 비롯하여, 왜관읍 왜관리에 2002년에 개관한 구상문학관, 군립공공도서관, 군민회관, 영화상영관, 2개의 공공 공연장 등이 있어 향토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고 있다. 칠곡문화원에서는 매년 10월 중 칠곡문화한마당을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왜관읍 서전리에 있는 국조전에서는 매년 3월 15일 춘양제와 10월 3일 개천숭봉대제를 지낸다. 또한 매년 5월 7일은 칠곡군민의 날로, 기념행사 및 자랑스러운 군민대상 시상, 군민화합을 위한 체육·문화예술 행사가 펼쳐진다.

민속

이 고장에는 달맞이·부럼깨기·지신밟기·그네뛰기·씨름·윷놀이·연날리기 등의 세시적 민속놀이가 전해오고 있다. 달맞이는 정월대보름날 저녁 마을사람들이 동산에 올라 달이 솟는 것을 바라보며 각자의 소원을 비는 것이다.

이 때 달의 빛깔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지신밟기 역시 대보름날 행해지는데 마을의 청장년들이 모여 농악에 맞추어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을 밟아주며 일 년 동안의 복을 기원해주는 놀이이다.

이 고장의 동제는 청단제(淸壇祭)라고도 불리며, 대상신은 주로 동신과 산신이다. 제일은 대개 정월 초순에서 보름까지인데, 매년 정해진 날짜에 지내는 마을도 있지만 그때그때 길일을 택하여 지내는 마을도 있다.

제관은 상중(喪中)에 있지 않은 성인남자 중에서 고른다. 제관이 되면 집의 입구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 부정을 피하고 제 지내기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육류를 금한다. 이 때 제단 부근에도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며 동민들도 도살을 금하는 등 엄격한 금기를 지킨다.

제를 지낸 뒤 소지를 올리면서 가가호호의 무사와 태평을 기원하며, 다음날 아침에는 모든 동민들이 모여 음복을 같이하고 제관의 노고를 치하한다. 제에 필요한 경비는 가구마다 동일하게 분담하는데, 경비뿐만 아니라 제의 전반에 걸쳐 동일한 책임과 의무를 동민에게 부여함으로써 동류의식과 참여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설화·민요

이 고장의 대표적 설화로는 말구리마을의 「아기장수전설」과 한솔마을의 「할미바위전설」을 들 수 있다.

옛날 북삼읍 오평리의 말구리마을에 김씨 성을 가진 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하루는 아내가 늦게서야 논일을 하러 나오므로 남편이 늦은 이유를 묻자 아내는 아들을 낳고 오느라고 늦었다 하였다. 이에 남편이 급히 집으로 달려가 찾아보았으나 아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남편이 온 집안을 뒤져보니 아기가 선반 위에서 놀고 있었다. 금방 낳은 아기가 이러하니 이는 필시 귀신이 씌었거나 반역을 일으킬 장수아기일 것이라 생각한 부부는, 이대로 두면 집안이 위태로울 것이라 하여 아기를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그래서 다듬잇돌을 던져 아기를 죽이고 말았는데, 그 때 갑자기 산천이 진동하고 번개가 내리치더니 훌륭한 용마가 한 마리 나타나서 울며 집 주위를 3일간 계속 뛰어다니다가 못에 빠져 죽었다. 그 뒤 사람들이 이 용마가 죽은 마을을 말구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기산면 영리의 한솔마을에 있는 할미바위에도 다음과 같은 유래담이 전해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침입하자 적을 방어하기 위한 축성공사가 시작되었다. 그 때 한솔마을에는 일찍이 청상과부가 되어 유복자로 얻은 외아들과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아들을 장가들여 손주를 보고싶은 마음으로 살아갔다. 언젠가 아들이 우연히 병을 얻어 눕더니 죽는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할머니는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지성을 드리자 산신령이 나타나 뒷산 중허리바위 밑을 파면 또아리가 하나 나올 것이니 이를 사용하여 바위를 이고 여덟 차례 축성하는 곳으로 정성스레 나르면 아들의 병이 깨끗이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대로 할머니가 바위 밑을 파자 정말 또아리가 있었으므로 그것을 가지고 여덟 개의 큰 바위가 나란히 있는 팔암골로 갔다. 또아리를 머리에 대고 바위를 이니 아주 가볍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아들을 빨리 낮게 하고픈 욕심에 산신령의 말을 저버리고 한꺼번에 바위 여덟 개를 이고 축성하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바위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또아리가 땅에 떨어지는 바람에 할머니는 바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밑에 깔려 죽고 말았다. 그 때부터 이 바위를 할미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그 뒤 바위 밑에 깔린 또아리가 금또아리라는 소문이 돌아 욕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바위 밑을 파는 통에 바위는 더욱 깊이 파묻혀 지금처럼 사람의 키 정도로 되었는데, 이 바위는 나라에 길조가 있으면 솟아오르고 흉조가 있으면 조금씩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고장에는 「모찌기소리」·「모내기소리」·「물레질소리」·「꽃노래」·「메밀노래」·「댕기노래」·「뼈꾹새노래」·「주머니노래」·「시집살이노래」 등 많은 노래가 전승되고 있다.

북삼읍 일대에서 들을 수 있는 「모찌기소리」는 “저승채사 강님도령 이승채사 이명선이/ 훌쳐가소 훌쳐가소 이못자리 훌쳐가소/ 들어내세 들어내세 이못자리 들어내세/ 이와내세 이와내세 이못자리 이와내세……세침바늘 낚시를매어 알배기처녀 낚아내세……대장부간장 다녹인다……”하며 부른다.

「모내기소리」는 남녀간의 애정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이 많으며, 특히 그들의 억압되어 있던 감정을 분출하는 경향이 있다. 이 고장에서 「모내기소리」로 “이물꼬저물꼬 헐어놓고 주인네양반 어디갔소/ 화랑부채 펼쳐들고 첩의방에 놀러갔네……”라는 노래와 “상주함창 공검못에 연밥따는 저처녀야/ 연밥줄밥 내따줄께 이내품에 자고가소……”로 시작하는 노래가 많이 불려진다.

「모내기소리」에는 성(性)을 소재로 하는 가사가 많은데 이 고장의 「모내기소리」에는 “……요개꼽고 저개꼽고 주인네마누라 복판에꼽고/ 서울이라 유달케네 금비둘기 알을 낳네……”와 같은 가사가 있다. 모를 꽂는 행위를 골계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노동행위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효과를 보고 있다.

「모내기소리」에는 점심참이 올 무렵 점심참을 재촉하는 가사를 지어부른다. 들어보면 “……찹쌀닷말 입살닷말 임이라고 더디오네/ 서울이라 남우정지 점심조차 더디오네……”와 같다.

「물레질소리」는 가락이 유장하고 내용도 재미가 있어서 부녀자들 사이에 비교적 전승이 잘 되고 있다. “오로롱 오로롱 물레질 중늙은이 노리개/ 뼈꿈뼈꿈 담배질 상늙은이 노리개/ 속닥속닥 바느질 색시들의 노리개/ 팔랑팔랑 부채질 새신랑의 노리개/ 팔랑팔랑 금초댕기 처자들의 노리개……”와 같이 부른다.

산업·교통

농가인구는 2008년 현재 1만 4708명으로, 전체인구의 12.5%를 차지하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67.66㎢이며, 그 중 논이 39.91㎢로 59%, 밭이 27.75㎢로 41%를 차지한다. 저수지로는 금화저수지·동명저수지·백운지·남계지·하빈지(河濱池) 등이 있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농업은 주곡농업 이외에 대구광역시와 구미시의 대소비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원예농업이 활발하다. 특히 알이 굵고 당도가 뛰어난 포도와 참외가 재배되며 시설소채류와 범람원상의 사과재배에 있어 상당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특산물로는 왜관읍·약목면·북삼읍 등의 참외, 약목면·가산면·북삼읍 등지의 돼지, 동명면·석적읍에서 주로 재배되는 표고버섯과 성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경영하는 왜관읍 금남리 소재 분도농장에서 양식하여 탕(湯)으로서는 국내 처음 생산 판매되는 토룡탕, 지천면 황학리, 기산면 각산리 등지에서 생산되는 토종꿀이 있다.

이 밖에 닭과 육우의 사육이 활발하며, 산간지역에서는 특용작물의 재배와 양잠이 행해진다. 그러나 양잠은 1976년을 고비로 점차 감산을 거듭 그 이 후 매년 쇠퇴일로를 걷고 있다. 이에 따라 제사업체도 양잠의 부진으로 원료부족현상을 빚어 정상가동을 못하는 실정이며 도산위기에 놓여있는 현실이다.

근래에는 대구와 구미의 섬유 및 전자업체를 지원하는 소규모의 하청공장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 도시의 통근자주택지구가 형성되어가고 있다.

금오산·유학산·도고산·팔공산 일부와 그다지 험악하지 않는 산지가 많은 한편, 토질과 기후가 수목생육에 적당하고 삼림 식물지대상 온대에 속하고 있다. 이처럼 수목의 생육에 가장 알맞은 기후풍토를 가졌음에도, 임상(林相)은 일찍이 황폐해져 버렸다.

2008년 현재 임야는 전체면적의 약 65.5%를 차지하며 입목축적은 241만 9449㎥이고 임산물생산량은 14만 266㎏이다.

또한 낙동강이 중앙을 지나고 있어 옛부터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한 가구도 많이 있었으나, 산업발전에 따라 낙동강이 오염되어 수산자원도 고갈상태에 있다. 고기잡이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은 없어졌으며, 부업정도로 몇 가구만이 부업정도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수지 등에 가두리 양식을 소규모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칠곡군의 산업단지는 구미국가3단지, 왜관지방산업단지, 기산농공단지로, 모두 393개 기업체가 입주하고 있으며, 주요생산품은 전자, 섬유직물, 금속이다.

한편 상업 활동을 보면, 1770년에서 1830년대에 이르러 상업의 발달로 많은 장시들이 신설·폐지되었다. 또 각각 하나의 장시를 중심으로 상호 유기적인 시장권을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1832에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의하면, 우암장(牛巖場)·매원장(梅院場)·상지장(上枝場)·남창장(南倉場)과 같은 시장이 본군에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중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왜관읍 왜관장이 1·6일, 지천면의 신동장이 5·10일, 동명면 동명장이 4·9일, 양목면 양목장이 3·8일에 각각 열리는데 이들 시장에서는 봄에는 참외, 가을에는 사과·포도가 주로 거래된다.

그리고 본 군내에서 볼 수 있는 슈퍼마켓은 식품·육류·농수산물 등의 생활필수품을 취급하는 대규모의 소매상점(小賣商店)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소매상점은 소비자들에게 생활필수품을 제공하는 소규모 상점으로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다.

교통은 국도 4호가 김천∼대구, 5호가 군위∼대구, 국도 3호가 왜관∼성주와 연결되는 등 5개의 국도 이외에도 4개의 지방도가 각 읍면으로 연결된다. 경부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가 지나며, 철도 경부선이 있어 편리하다.

관광

북부에 팔공산맥(八公山脈)의 서쪽 끝인 가산에서 유학산으로 이어지는 산지가 있고, 서부에 금오산·영암산이 솟아 있다. 낙동강이 중앙을 남북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어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이 군은 대구 근교에 위치하며 대도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산악·전적(戰蹟) 관광지이다. 또한, 낙동강변의 과수농원은 대구 근교의 주말관광지로 대두되고 있다.

관광지로는 가산면 가산리의 가산산성과 다부리의 다부동전적기념관, 가산면 학산리·학상리와 석적읍 성곡리 경계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유학산, 동명면 구덕리의 송림사, 북삼읍 숭오리의 금오동천이 있다.

팔공산 북서단의 가산 산정에 임진왜란 이후 축조된 가산산성(架山山城)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일대는 팔공산도립공원 4개지구(架山·把溪寺·桐華寺·銀海寺) 중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칠곡일대는 부산·대구·조령(鳥嶺)·충주·서울로 통하는 영남(嶺南)의 요로(要路)였다.

가산산성은 이 길을 감제(瞰制)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병자호란(丙子胡亂) 후 17∼18세기에 걸쳐 축조되었다. 우리나라 산성으로는 유일하게 정상에 내성(內城), 중턱에 중성(中城), 하단에 외성(外城)을 쌓은 3중성(三重城)이며 포곡식(包谷式: 계곡 포함, 테뫼식) 석성(石城)이다. 이 성은 천험(天險)의 요새에 입보(入堡)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축성기술이 명확하게 남아 있어 조선 후기의 성곽연구에 중요한 사료(史料)가 되고 있다.

학이 노닐다 갈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유학산에는 높이가 50m나 되는 바위절벽(일명 쉰질바위)과 도덕암이 있고 정상에는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유학산 동남쪽 다부리에는 6·25전쟁 때 북한군의 낙동강 도하를 저지하여 적군을 섬멸한 것을 기념하는 다부동전적기념비와 기념관이 있다.

544년(진흥왕 5)에 창건된 송림사는 1235년에 몽고군에 의해, 1597년에는 왜병에 의해 불탔다가 1858년 중건되었다. 대웅전 앞의 많은 벽돌(塼)을 반듯하게 쌓아 만든 높이 16.3m의 오층전탑(五層塼塔)은 9세기 초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의 현판은 숙종의 친필이며 대웅전 안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드문 큰 목(木)불상이 모셔져 있고, 그 외에도 전국에서도 규모가 제일 큰 명부전과 당간지주가 있다.

금오동천(金烏洞天)은 영남의 명산이며 경북팔경 가운데 제일로 꼽히는 수려한 명산인 금오산의 서쪽 계곡이다. 금오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800m 가량 아래의 성안분지에서 산 아래 계곡이 끝나는 지점까지를 말하며, 특히 여름철에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사철 맑고 시원한 물이 숲에 덮인 계곡을 흐르고 작은 폭포와 소(沼), 바위틈에 부딪치는 물소리 등이 어우러져 선경을 이룬다.

그 외 동명면 득명리의 한티마을과 구덕리의 기성계곡 그리고 기성리의 삼층석탑, 지천면 연화리의 신나무골, 칠곡군 석적읍의 왜관지구 전적기념관, 가산면 금화리의 금화계곡과 금화저수지·금화관광농원, 임진왜란 때 홍의 장군 곽재우(郭再祐)가 많은 의병을 모아 왜군을 대파한 천생산성 등이 있다. 또한 매년 5월이면 지천면 신동재에서는 아카시아벌꿀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읍·면
  1. 북삼읍(北三邑)

군의 북서단에 위치한 읍. 면적 36.72㎢, 인구 2만 639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인평리이다. 본래 인동군(仁同郡) 지역으로 북삼면이라 하여 신촌·어부·점촌 등 23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읍내면·약목면의 일부와 선산군의 일부가 편입되어 칠곡군에 속하게 되었다. 1973년에는 낙계리(洛溪里)가, 1983년에는 오태리(吳太里)가 각각 구미시로 편입되었으며, 2003년 7월 1일 북삼읍으로 승격되었다.

서부에 금오산(977m)·영암산·도덕산·서진산 등의 산세가 극히 준엄하고 많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고도가 낮아진다. 중앙부는 남북산괴를 양분하면서 경호천(鏡湖川)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관류한다.

이 하천으로부터 동쪽 면의 경계를 흐르는 낙동강안까지 이르러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특히 낙동강 본류를 따라 펼쳐지는 충적평야는 그 범위가 넓으며, 미곡생산에 적합하다. 낙동강변 구릉지대는 과수·채소 재배에 적합한 토지로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은 9.16㎢로 24.9%, 임야면적은 21.03㎢로 57.2%, 기타는 17.9%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2.79㎢로 30.5%를 차지하고 논이 6.37㎢로 69.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곡 이외에 채소·양송이 재배와 양돈이 활발하다. 그리고 밤·대추·표고버섯·산나물 등의 임산물도 생산된다. 그리고 숭오목공예는 정부로부터 농어촌 특산단지로 지정 받았으며, 주로 오동나무와 스기목 등을 사용하여 보다 견고하고 미적 감각을 지닌 목상자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어로리와 율리의 참외는 전국적인 판로를 가지고 있으며, 구미공단에 가까우므로 전자부품의 하청공장이 입지하고 있다. 구미시의 팽창에 따라 구미지역 배후 주거도시로의 기능이 확장되어 공단취업 근로자의 다수유입과 많은 아파트 건립 등으로 인구 증가 추세에 있다.

교통은 경부선철도와 대구∼구미간의 국도가 중앙부를 관통하며, 경부고속도로가 북동부를 지나가므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숭오리에 선봉사대각국사비와 어필각이 있다. 숭오리의 금오동천은 피서지로 유명하다. 경부고속도로가 낙동강을 횡단할 수 있도록 낙동대교(洛東大橋)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율(栗)·어로(漁蘆)·보손(甫遜)·숭오(崇烏)·인평(仁坪)·오평(吾坪) 등 6개 리가 있다.

  1. 석적읍(石積邑)

군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49.69㎢, 인구 3만 3736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포남리이다. 본래 인동군 지역으로 석적면(石赤面)이라 하여 망정·사동·도개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문량면(文良面)의 7개 리, 장곡면(長谷面)의 7개 리, 읍내면과 동면(東面)의 일부, 칠곡군 동북면(東北面)과 장천군 장천면(長川面)의 일부가 병합되어 칠곡군 석적면이 되었다. 1916년천평리가 가산면으로, 1983년아곡리·황학리가 왜관읍과 지천면으로 편입되었다. 2006년 10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쪽에 유학산·봉두암산, 남쪽에 소학산·기반산·작오산, 중앙에 숲데미산(519m)이 솟아 있다. 광암천과 반계천(磻溪川)이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흘러들며, 그 연안과 합류지점 부근에 소규모의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총경지면적은 7.26㎢로 14.6%, 임야면적은 33.38㎢로 67.2%, 기타는 18.2%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3.07㎢로 42.3%를 차지하고 논이 4.19㎢로 57.7%를 차지한다. 주곡생산 이외에 낙동강안의 범람원을 이용한 사과 및 채소재배가 활발하다.

그리고 표고버섯·대추·도토리·산나물·연료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며 토끼·한우 등이 사육된다. 구미 제3공업단지 총 145만 평 중 40만 평이 중리일대에 조성되어 면의 지역이 점차 커지고 구미지역 근로자의 다수 유입으로 인구 증가 추세에 있다.

교통은 서쪽 경계를 따라 경부고속도로와 적중(赤中)∼해평(海平)간의 지방도가 지나며, 왜관∼죽적간의 지방도가 동부를 지나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남률리에 장진홍(張鎭弘)의사의 묘소, 중리에 봉양서원이 있다. 포남리에는 성주이씨(星州李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와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포남(浦南)·중(中)·남률(南栗)·성곡(城谷)·중지(中旨)·반계(磻溪)·망정(望亭)·도개(道開) 등 8개 리가 있다.

  1. 왜관읍(倭館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54.12㎢, 인구 3만 2650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왜관리이다. 본래 칠곡군 지역으로 금산에 있는 파산의 이름을 따서 파미면(巴彌面)이라 하여 월매·장달 등 19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노곡면의 7개 이와 도촌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왜관의 이름을 따서 왜관면이 되었다. 194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에 장원봉(372m)·금무산(錦舞山, 268m), 북동쪽에 기반산(464m), 북쪽에 작오산(303m) 등이 솟아 있고,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남북으로 관류하는 낙동강 유역에 약간의 평야가 형성되어 도시근교농업이 발달하였다.

총경지면적은 11.26㎢로 20.8%, 임야면적은 26.29㎢로 48.7%, 기타는 30.5%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4.25㎢로 37.7%를 차지하고 논이 7.01㎢로 62.3%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곡 이외에 대도시에 공급할 사과·참외 등 고소득과실과 채소류 등이 재배되고 있다. 밤·도토리·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며 개·닭 등의 가축사육이 행해진다. 군의 행정·산업·교통의 중심지로서 농산물과 성주일대 및 군내에서 생산되는 수박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한때 이곳은 낙동강 수운의 종점이기도 하였으며, 지금은 경부선철도의 주요 역이자 군위·안동·김천·합천 등지에 이르는 도로의 교차점이 되어 교역의 중심지로 상업이 활발하다. 그러나 동남쪽으로 대구광역시와 서북쪽으로 구미시 사이에 입지하여 점차 위성도시화 되어가고 있다. 문화유적은 석전리에 왜관지구전투전승비, 낙산리의 금무봉 나무고사리 화석포함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교, 중학교 4개 교, 고등학교 2개교가 있다. 왜관(倭館)·석전(石田)·매원(梅院)·삼청(三淸)·봉계(鳳溪)·금산(錦山)·낙산(洛山)·금남(錦南)·아곡(牙谷) 등 9개 리가 있다.

  1. 가산면(架山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86.81㎢, 인구 3,78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다부리이다. 본래 인동군 지역으로 인동읍내의 동쪽이 되므로 동면(東面)이라 하여 사부·칠송·토곡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적면의 4개 리와 칠곡군 동북면의 12개 리가 병합되어 가산산성의 이름을 따서 가산면이 되었다. 1916년석적면 천평리가, 1987년에는 선산군 장천면 석우리가 각각 편입되었으며, 1989년신장리가 선산군 장천면으로 이속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되어 있으며, 동남쪽에 가산, 서쪽에 유학산이 솟아 있다. 면의 중앙을 한천이 북류하여 구미시 장천면과의 경계를 따라 흐르면서 그 연안에 충적평야를 전개시키며, 그 지류 또한 면의 동부에서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총경지면적은 10.86㎢로 12.5%, 임야면적은 67.96㎢로 78.3%, 기타는 9.2%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3.62㎢로 33.3%를 차지하고 논이 7.24㎢로 66.7%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경지율은 동명면 다음으로 낮다.

주곡생산 이외에 사과·감 등의 과수재배가 활발하며 밤·대추·도토리·산나물·산수유·송이버섯 등의 임산물이 생산된다. 양계와 한우 등의 가축사육이 행해진다. 천평리의 새터마을은 양계와 과수단지조성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교통은 마산∼중강진간의 국도가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면서 안동·대구방면과 연결된다. 김천∼가산, 왜관∼죽전간의 지방도가 뻗어 있어 구미·왜관방면으로 연결되며, 대구·춘천간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며 다부IC와 가산IC가 있다.

문화유적은 가산리에 가산산성과 임진왜란 때 곽재우장군이 왜적을 무찌른 천생산성이 있다. 다부리에는 6·25사변의 격전지인 유학산에 전승비와 유엔군전승비가 있고 하판리에는 열녀홍문(烈女鴻門)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가 있으며 다부리에 대구예술대학교가 있다. 다부(多富)·금화(金華)·가산(架山)·응추(鷹秋)·용수(龍岫)·천평(泉坪)·하판(下板)·심곡(審谷)·석우(石隅)·학하(鶴下)·학상(鶴上)·학산(鶴山) 등 12개 리가 있다.

  1. 기산면(岐山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0.42㎢, 인구 3,57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죽전리이다. 본래 약목현(若木縣) 지역으로서 1390년(공양왕 2)약목현이 인동현(仁同縣)에 예속되면서 인동현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편에 의해 인동군 기산면이 되어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칠곡군 약목면에 편입되었다. 1974년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3년노석리가 성주군으로부터 분리, 편입되었으며, 1986년 면으로 승격되었다.

서부는 구릉성 산지로 성주군과 접하고, 북쪽으로 비룡산(飛龍山, 576m)이 약목면과 경계를 이룬다. 동쪽으로 낙동강이 연하여 흐르고 있어 전체로는 북·서쪽이 산지로 둘러싸이고 동쪽으로 열린 지형을 이룬다. 면내를 동서로 서원천이 흐르며, 낙동강과의 합류지점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은 8.27㎢로 20.5%, 임야면적은 26.06㎢로 64.5%, 기타는 15.0%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3.15㎢로 38.1%를 차지하고 논이 5.12㎢로 61.9%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왜관읍과 인접하고, 대구광역시·구미시 등과 가까워 주곡 외에 사과·채소·양송이 등의 상업적 농업이 활발하다. 밤·연료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고 오리·산양 등이 사육된다.

농업용수를 위해 산록에 서치지(西峙池)·봉산지(鳳山池)·내각지(內角池)·평죽지(平竹池) 등의 소규모 저수지가 있다. 상업활동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일상용품 구입은 왜관읍에 의존한다.

또한 농공단지(54천평) 조성으로 공업기능이 활발하며 대학촌이 형성되면서 문화수준이 향상되고 있고, 왜관읍을 경계로 취락지구 개발이 활발하며 도로망 확충되었다.

교통은 면의 동서로 있는 국도 33호선, 지방도 303·304호가 상호 보완적 형성하고 있다. 면의 중앙을 왜관읍과 성주읍을 잇는 국도가 관통하고 있으나 면내의 도로는 비포장이어서 불편하다. 과거에는 서부산지의 지경재·질매재·달음티재 등이 성주와 연결되는 내륙 교통로였다. 낙동강에는 나루터가 있어 하안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죽전리의 강정마을과 노석리의 노티마을은 낙동강 수운을 이용, 성주군과 고령군 등지로 소금을 운반하는 집산지로 형성된 취락이다. 낙동강 연변의 백사장은 인근의 과수원과 연결되어 주변의 도시주민들에게 좋은 관광지로 이용된다.

문화유적은 노석리에 마애불상군, 평복리에 소암서원, 봉산리에 고분군이 있으며, 행정리에는 500년 이상된 배나무가 있다. 주민들은 이를 당산목으로 받들어 매년 섣달 그믐날에 제를 지낸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으며, 경북과학대학교가 있다. 죽전(竹田)·평복(平福)·영(永)·행정(杏亭)·봉산(鳳山)·각산(角山)·노석(老石) 등 7개 리가 있다.

  1. 동명면(東明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4.03㎢, 인구 5,8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금암리이다. 본래 칠곡군 지역으로 칠곡읍내의 서북쪽이 되므로 서북면(西北面)이라 하여 금산·강당·구암 등 2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북면(下北面)의 15개 리와 동북면(東北面)과 팔거면의 각 일부가 병합되어 학명리의 동명원(東明院)의 이름을 따서 동명면이 되었다.

팔공산맥의 남사면에 해당하고 가산·오계산(午鷄山, 466m)·백운산·건령산(建靈山, 518m)·도덕산(道德山, 660m) 등의 고산으로 둘러싸여 산지가 지배적이다. 남쪽에서는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팔거천이 중앙을 남류하여 그 일대에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팔거천의 침식곡저(侵蝕谷底)에 약간의 경지와 취락이 분포한다. 가산에는 산정에 평탄면이 있고, 그 주변을 가산산성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남쪽에 기성리를 중심으로 하는 전형적인 산간분지가 있다.

총경지면적은 7.85㎢로 12.3%, 임야면적은 49.36㎢로 77.1%, 기타는 10.6%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2.35㎢로 29.9%를 차지하고 논이 5.50㎢로 70.1%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경지율은 군내에서 가장 낮으나, 대구광역시에 인접하여 근교농업인 고등소채 재배와 양잠·버섯 재배가 성행하고 있다.

한우·젖소·산양·토끼·오리·거위 등도 사육된다. 또한 호두·대추·도토리·연료·산나물 등의 임산물도 생산된다. 한티재 남쪽에는 아연·금·은 등이 산출되는 칠곡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광되었다.

교통은 마산∼중강진간의 국도가 중앙부를 남북으로 지나면서 이 면을 대구·안동과 연결되고, 왜관∼죽전간의 지방도가 대구광역시와의 경계를 따라 뻗어 있어 군위군과 연결된다. 대구의 시내버스가 이 면까지 운행되어 편리하다. 또한 팔공산 순환도로 개설로 인해 도시근교 관광지로서 각광받고 있다.

문화유적은 구덕리의 송림사오층전탑, 기성리에 삼층석탑이 있다. 득명리 한티마을은 한말(韓末) 천주교도들이 은거하다가 순교한 천주교성지이다. 구덕리에는 5㎞에 걸친 기성계곡이 있는데, 숲이 울창하고 물이 맑고 깨끗하여 여름에 무더위를 피하기 좋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금암(錦巖)·송산(松山)·가천(柯川)·학명(鶴鳴)·남원(南元)·득명(得明)·기성(箕聖)·구덕(九德)·봉암(鳳巖) 등 9개 리가 있다.

  1. 약목면(若木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0.28㎢, 인구 1만 205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복성리이다. 본래 약목현 지역으로 조선 중기에 약목면이 되어 와야·내야·왜관 등 2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산면의 20개 리와 북삼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칠곡군에 편입되었다. 1974년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86년 이 출장소가 기산면으로 승격되어 분리되었다.

서고동저의 지형으로 서쪽에는 서진산 등 높은 산이 솟아 있고, 동쪽은 낙동강의 범람원으로 되어 있다. 금오산에서 발원한 경호천과 두만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들며 그 합류점 부근에 대규모의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총경지면적은 9.98㎢로 33.0%, 임야면적은 13.61㎢로 44.9%, 기타는 22.1%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3.20㎢로 32.1%를 차지하고 논이 6.78㎢로 67.9%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곡생산 이 외에 채소·양송이·사과·참외·수박 재배로 농가소득을 올린다. 그리고 대추·표고버섯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며 한우·젖소·돼지·개 등의 가축사육이 활발하다.

구미공업단지와는 10㎞이내의 거리에 있어 많은 아파트의 건립으로 구미지역 배후 주거도시로의 기능이 확장되고 있어 인구 증가 추세를 보인다. 또한, 소규모의 전자부품 하청공장이 늘어가고 있고, 관호리에는 타일공장이 있어 타일이 많이 생산된다. 복성리에는 시멘트공장이 있으며, 낙동강 백사장과 사과과수원단지는 산업관광지화되고 있다.

교통은 경부선과 대구∼구미간의 국도가 뻗어 있어 대구·구미·김천·성주 등지로 연결되어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남계리에 신유장군유적·용화사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복성(福星)·동안(東安)·남계(南溪)·교(校)·덕산(德算)·무림(茂林)·관호(觀湖) 등 7개 리가 있다.

  1. 지천면(枝川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88.87㎢, 인구 4,82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리이다. 본래 칠곡군 지역으로 웃간의 이름을 따서 상지면(上枝面)이라 하여 수정·남행·북행 등 18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언면(伊彦面)의 13개 리와 도촌면(道村面) 9개 리, 노곡면(蘆谷面)과 인동군 석적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지천면이 되었다.

동쪽에 건령산·명봉산(明峰山, 402m), 북쪽에 소학산·황학산·백운산 등이 솟아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구릉성산지로 되어 있다. 금호강의 지류인 이언천이 이들 산지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류하며 그 연변에 소규모의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면내에는 하빈지(河濱池)를 비롯한 대규모의 저수지가 있어 수리율이 높다.

총경지면적은 12.93㎢로 14.5%, 임야면적은 66.84㎢로 75.2%, 기타는 10.3%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3.38㎢로 26.1%를 차지하고 논이 9.55㎢로 73.9%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곡생산 이외에 오이·딸기·참외 등의 근교농업과 사과·포도 등의 과수재배가 활발하다.

그리고 밤·호두·대추·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고 젖소·돼지·개·닭 등의 가축사육과 양봉이 활발하다. 낙산리와 오산리의 울창한 아카시아숲에서는 양봉이 행해진다. 대구에 인접하여 개발제한구역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공원묘지가 산재하여 개발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통은 경부고속도로와 김천∼대구간의 국도가 동서로 지나고, 지방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 왜관읍으로 연결되는 등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백운리에 백운사와 탑, 신리에 사양서원, 창평리에 녹봉정사(鹿鳳精舍), 심천리에 쌍렬각(雙烈閣)·금락정(琴洛亭), 창평리에 입석, 연화리에 천주교 선교의 요람지인 신나무골성지 등이 있다. 달서리의 약수터와 백운리의 청구공원(靑丘公園)도 유명하다. 신리에는 광주이씨(廣州李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신(新)·송정(松亭)·금호(錦湖)·연화(蓮花)·달서(達西)·백운(白雲)·창평(昌平)·심천(深川)·덕산(德山)·영오(永梧)·오산(梧山)·용산(龍山)·연호(蓮湖)·낙산(樂山)·황학(黃鶴) 등 15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인동읍지(仁同邑誌)』
『칠곡군통계연보』(칠곡군, 2008)
『경북통계연보』(경상북도, 2005)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3)
『한국지지』(건설부국립지리원, 1985)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경상북도지명유래총람』(경상북도교육위원회, 1984)
『호국의 고장』(칠곡군, 1983)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향토칠곡의 자랑』(칠곡군, 1978)
칠곡군(www.chilgok.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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