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목읍 서쪽의 수물산으로부터 그 동남쪽인 읍으로 뻗은 지역에 300여 기가 남아 있다. 오래 전부터 도굴되어 지금은 외형상으로 완전한 고분이 거의 없다.
1923년에 처음으로 조사되었으나 발굴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며, 1961년에 경북대학교 조사단에 의해 다시 1기가 발굴되었다. 이 때 발굴된 고분은 약목초등학교 북쪽 능선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봉분은 지름이 21m이며, 높이는 북쪽에서 1m, 남쪽에서 5m인 원분이다. 내부구조는 봉분 중앙부에 토광을 파고 장방형의 거대한 석실을 마련하였다. 석실을 중심으로 반지름 약 7m되는 낮은 토류석열(土留石列)을 돌렸다. 그리고 남쪽의 토류석열 밖으로 다시 작은 석곽 하나가 배치되어 있었다.
고분은 횡구식석실분(橫口式石室墳)으로 석실의 외면을 붉은 진흙으로 두껍게 다졌고 그 위에 잡석이 많은 진흙을 50㎝ 가량 덮은 다음 다시 잡토를 쌓아 봉분을 이루었다.
장축방향은 동서이며, 규모는 길이 5.8m, 높이 1.4m, 너비는 중앙에서 1.35m, 양 끝쪽은 1.2m였다. 긴 벽은 판석을 8매씩 1열로 세웠고, 동·서단벽은 각각 판석 1매씩으로 막았다. 천장은 거대한 5매의 판석으로 덮었고, 바닥은 유물을 두었던 부분과 시체가 놓였던 부분을 구분해 크기가 다른 자갈로 얇게 깔았다.
부장품은 다양한 토기가 대량 출토된데 비해 귀금속과 장신구는 1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고분이 교란된 흔적도 없고 석실의 규모가 거대한데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점이 특기할 만하다.
출토유물은 무기류로 길이 77.5㎝의 철대도(鐵大刀) 1점, 도자(刀子) 1점, 창 1점, 활촉 다수, 마구류로 철등자(鐵鐙子) 1쌍, 교구(鉸具) 2점, 운주편(雲珠片) 다수가 출토되었다. 토기는 경질토기(硬質土器)로서 높이 91㎝의 대옹(大甕) 1점, 대형 감대(大形坩臺) 3점, 대형 기대(大型器臺) 1점, 대부장경호(臺附長頸壺) 4점, 장경호 2점, 유개식고배(有蓋式高杯) 17점, 무개식고배 4점, 이부배(耳附杯) 2점, 단경호 1점, 영배(鈴杯) 1점과 적색연질토기(赤色軟質土器)로서 소형 광구호(小形廣口壺) 1점, 소형 배(小形杯) 4점, 소형 기대(小形器臺) 4점 등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