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서문예신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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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9월에, 김억, 이일, 장두철 등이 중심이 되어 서구 문예 소개를 위해 창간한 주간 문예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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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18년 9월에, 김억, 이일, 장두철 등이 중심이 되어 서구 문예 소개를 위해 창간한 주간 문예 잡지.
개설

B4판. 8면.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지로 1918년 9월 창간되어 1919년 2월 16호로 종간되었다. 주간은 장두철(張斗澈)로 발간 당시에는 종합지의 성격을 띠고 문예작품 외에도 취미기사를 실었으나 그 뒤 곧 문예지의 성격을 띠었다.

내용

주요 내용은 창작시 · 번역시 · 창작소설 · 번안소설 · 외국문학과 문단 사정의 소개, 시론(詩論) 등으로 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시와 해외 시의 수입 · 소개를 겸한 이론들이다. “본보는 저 태서(서양)의 유명한 소설 · 사조 · 산문 · 가곡 · 음악 · 미술 · 각본 등 일반문예에 관한 기사를 문학 대가의 붓으로 직접 본문으로부터 충실하게 번역하여 발행”할 것이라고 밝힌 창간호의 권두언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김억(金億) · 이일(李一) · 장두철 등이 중심이 되어 서구문예의 도입 소개에 주력하였다.

1919년 2월 16일까지 약 5개월(21주) 동안 16호를 내고 있으니, 매주 정기적으로 발행되지는 못한 셈이지만 당시의 사정으로 보아서는 좋은 성적이라 할 수 있다. 편집 · 발행자들의 열의를 짐작할 수 있다. 매호 권두에는 사설(社說, 에디토리얼)을 싣고 있으며 음악 · 미술까지도 포함한 예술 전반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문학 중심으로 편집되었다.

특히 시를 제외한 다른 장르는 별로 많은 지면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준시전문지(準詩專門紙)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김억의 번역시와 시론은 한국 근대시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바 있으며 이 번역시들은 뒷날 한국 최초의 시집인 『오뇌의 무도』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과거 『소년』 · 『청춘』을 통하여 발표된 최남선(崔南善)이나 이광수(李光洙)의 시가 포에지(poésie, 시정신(詩精神))를 결여한 채 형태만의 새로움을 내세웠다면, 『태서문예신보』에 실린 김억 · 황석우(黃錫禹)의 창작 시편들은 개성적인 서정을 바탕으로 한 개성적인 운율의 창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이를 근대문학에 대한 최초의 자각이라고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많은 번역시와 외국 시론의 소개와 함께 총 38편의 창작 시를 싣고 있는 이 문예지는 『창조』로부터 시작되는 한국 근대문학의 개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韓國近代文藝批評史硏究)』(김윤식, 일지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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