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부터 존재한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전하고 있으나 『고려사』에는 보이지 않는다.
태종이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 형제를 숙청할 때 외척의 폐단을 극론(極論)하여 정비(靜妃)가 친정식구와 몰래 접촉하여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막고, 또 궁중의 말이 밖에 전파되는 것을 단속하기 위하여 파지가 갱번(更番)으로 밖에 나가던 것을 폐지하면서, 동궁의 파지는 소녀(少女)로, 대전의 파지는 환관으로 대체하였다.
궁중에서 물긷고 청소하는 일이 전적으로 무수리〔水賜伊〕로 돌아간 것은 이때부터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