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권4 ‘양지사석(良志使錫)’에 실려 있다. 영묘사(靈廟寺)의 불상을 만들 때 그 일을 도와주려고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이 노래를 지어주고 일을 하면서 부르도록 하였다고 한다.
오구라(小倉進平)는 이 노래를 『삼국유사』의 조목대로 「양지사석」이라 하였고, 양주동(梁柱東)은 「풍요」라 하였다. 김선기(金善琪)는 「바람결노래」라 불렀고, 그 밖에도 홍기문(洪起文)는 「오라가」, 김사엽(金思燁)은 「오라노래」라 하였다.
『삼국유사』에 사용된 ‘풍요’라는 명칭은 노래의 고유한 이름이 아니라 민요라는 노래성격으로 지칭한 것이다. 「풍요」란 민요라는 뜻으로, 성중의 남녀들이 불렀던 민요가 바로 이 노래이다.
이 노래와 관련되는 연기설화는 다음과 같다.
석 양지(良志)의 조상이나 고향은 알 수 없고, 오직 그 행적이 선덕왕 때에 있었다. 석장(錫杖) 끝에 베 주머니를 걸어 놓으면 석장이 저절로 날아가 보시하는 집에 가서 흔들어 소리를 내며, 그 집에서 알고 공양미를 넣어서 자루가 차면 석장이 날아서 절로 돌아왔으므로 석장사(錫杖寺)라 하였다 한다. 신기함이 대개 이와 같이 헤아릴 수가 없으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재주가 있었다.
또한 문장이 능숙하여 영묘사 장륙존상을 만들 때 장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운반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그곳 사람들이 방아를 찧거나 무엇을 다지거나 하는 일에는 모두 이 노래를 부르니 이 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향찰로 표기된 원가사와 그 해독 및 현대어 풀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원문: 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功德修叱如良來如
② 해독: 오다 오다 오다/오다, 서럽더라/서럽다, 우리들이여/공덕 닦으러 오다(양주동 해독)
③ 현대어 풀이: 오다 오다 오다/오다 서럽더라/서럽더라 우리들이여/공덕 닦으러 오다(최철 풀이)
이 작품의 해독에서 가장 큰 특징은 정열모의 것이다. 여래(如來)의 해독을 양주동, 홍기문, 김완진 등은 모두 오다, 오나, 오라 등으로 하여 비슷한 뜻으로 풀고 있는데, 정열모는 오료로 해독했다. 그리고 ‘哀反多羅(애반다라)’에서는 ‘애돌 하나’로 읽어서 ‘서러움이 많다’로 해독했다. 의미상으로는 다른 이들의 해독과 비슷하지만 해독하는 방법이 특이하다. ‘哀反多矣(애반다의)’ 역시 ‘애돌 하이’로 읽어서 문장의 끊음과 해독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徒良(도양)’의 해석은 양주동, 홍기문, 오꾸리 등은 ‘矣徒良(이도양)’을 하나로 보아 ‘의내여’로 풀이한 반면, 김완진은 多矣(다의)와 徒良(도양)을 끊어서 중생의 무리로 해석한 점이 특이하다.
이 노래는 영묘사의 장륙존상을 만들 때 성중의 남녀들이 부른 노래로, 내용은 공덕을 닦으러 오는 선남선녀의 행렬을 통해 한없는 열(列)을 상상할 수 있는 훌륭한 비유이다. ‘온다’는 말의 연속적인 반복은 끝에 공덕을 닦으러 온다는 말로 결론을 맺고 있다. 이런 형태는 민요의 원형으로서 후대에 이와 같은 민요형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송영적(頌詠的) 성격을 지녀 음악성을 느끼게 한다.
노래 가운데 ‘서럽더라’는 믿음이 없는 현세의 삶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노래는 현존 향가의 민요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 형태의 노래 「서동요」나 「헌화가」와 같이 신라의 향가가 여러 사람들에 의해 불렸고 또한 그 속에는 불교의 포교적인 교리가 은연중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